피로사회에서 살아남기
"나는 요즘 BCSC라는 뇌과학 학회에 다니고 있어."
"그래? 나는 요즘 메가스터디에서 연구소 팀장이 되어서 말이야. 출근이 많아."
"나는 과외하면서 돈 버는데."
"학교 동아리도 만만치 않아서 시간이 많지가 않네."
"말도 마. 대학교 랩실 알아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야."
"나는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 활동도 하고 있어."
이때쯤 되자, 나는 우리가 누가 더 바쁘게 사는지에 대한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가 얼마나 젊은 시절을 의미 있게 보내는지 내기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나의 일 중 하나로 삼으면서, 나는 내 행위로 나의 삶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바쁘다고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시험 기간처럼 어쩔 수 없이 일정이 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시기도 찾아온다. 그러면, 나를 초청한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인답게 응답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여유를 되찾을 때면 어김없이 다시 연락을 건넨다. 그래서 남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데, 너는 안 바빠?"
현대 사회는 바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이다. 바쁜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고, 바쁘지 않은 사람은 시간 낭비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는 달랐다. 사회적인 계급이 있었던 과거에 양반 계층이나 귀족들은 여유로운 것이 미덕이었다. 천천히 거닐며 산책을 하거나 예술을 느끼는 것이 상류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정반대의 사회이다.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모두가 다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성공중독의 시대가 되었다. 바쁘게 일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은 성공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처럼 비친다.
"너희들이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너무나도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나한테 연락하렴. 내가 언제든지 밥을 사 줄게. 사실, 사람은 마음이 없는 거지. 시간이 없는 게 아니거든."
마지막 공과 공부 시간에 내가 고등부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너무나도 바쁘게 살다가 도움이 필요한 지체의 연락에 제때 응답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인지 늘 반문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맡은 반 학생들에게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기 때문에 교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통독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성경 3장 읽는 게 너무 어렵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에 성경을 읽으면 충분히 하루 통독할 분량을 읽을 수 있지만, 성경을 펴서 읽는 게 너무 힘들다. 우리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없다는 것이 곧 문제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쁘게 산다는 것이 죄를 짓는 것도 아니다. 진짜 심각한 위기는, 마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는 마음이 충만한 것처럼 거짓된 신앙인으로 사는 삶이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쉼'의 기쁨 없이 오직 자신의 의와 영광을 위하여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 삶의 태도가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읽기 힘들 때는 편안하게 기도한다.
"주님, 성경 읽기가 왜 이렇게 싫죠? 오늘은 읽기 싫은데, 말씀이 생명이라고 하셨으니 일단 펼쳐 보기는 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나에게 떨림과 울림이 되는 기적을 허락하신다. 하루 종일 일하다가 성경을 읽지 못하고 잠들 때에도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주님, 오늘은 말씀을 못 읽어서 영적으로 굶은 하루네요. 그러나,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평안히 잠들 수 있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해 주셨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나라의 초대장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반대로, 우리도 남을 초대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누군가 어려운 지체가 있을 때, 그 사람을 교회로 초대하고, 식사의 자리로 초대하고, 대화의 자리로 초대해야 하는 것이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 서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나는 '환대'하는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때,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한 사람이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과는 통화 한 번이라도 하고 죽고 싶다', '내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여겨지는 사람이고 싶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한 명 있다.
예수님.
예수님을 내 삶에 초대함으로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