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여행하듯이

잠시 머물다 갈 사람처럼, 그러나 영원히 살아갈 사람처럼

by Blueberry

일상을 여행하듯이

길 가다 만난 꽃

재수 시절 6월 모의고사를 신청하고 친구들과 스터디 카페로 향하던 길에 나는 여름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멀리서 친구들이 나를 몇 번이나 불렀다.

"야! 빨리 오라고!"

"잠시만, 이것만 찍고 갈게!"

친구들은 풀잎과 꽃들을 찍고 있는 나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은 확실히 재수생활이 잘 맞는 것 같아."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 저렇게 한가하게 사진이나 찍고 있을 때야?"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아가는 녀석이니까."

나는 사진을 다 찍고 친구들을 향해 달렸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넌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아간다고."

"그거 멋진데? 나에 대한 별명 같은 거야?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아가는 사람."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우리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갔다. 그 후로 나는 프로젝트 발표가 있거나, 나를 소개하는 문구를 쓰라고 할 때마다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을 적는다.

'저는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나는 산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 땅의 어떠한 시간 속에도 속하지 않고, 어떠한 행위에도 묶이지 않는 무적이 된 것만 같다. 마치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삶인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브리서 11장 13절

히브리서에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의 완전한 성취를 살아 있는 동안 다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즉, 믿음은 눈앞에 결과가 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라는 뜻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았지만, 이 세상에 완전히 속한 사람처럼 살지 않았다. 여기서 “외국인”과 “나그네”는 “이곳이 내 영원한 본향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세상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 땅에서 성실히 살되 여기에 모든 희망을 걸진 말라는 뜻에 가깝다.


잠시 머물다 갈 사람처럼,

그러나 영원히 살아갈 사람처럼

어느 날, 가족 단체 톡방에 아버지께서 기도 하나를 올려주셨다. 제목은 '무명 자매의 기도'였다. 예배 시작 시간에 한 성도가 나와서 드린 기도였는데, 진실된 기도에 감동이 밀려왔다. 공부를 하기 전에 기도문을 틀어놓고 기도를 하는데, 문득 한 문장이 마음을 움직였다.

"잠시 머물다 갈 사람처럼, 그러나 영원히 살아갈 사람처럼 살게 하시옵소서."

멋진 기도문이었다. 누군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달라고 한다면, 저 문장을 소개해주고 싶을 만큼 감동이 컸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은 기껏해야 100년 남짓이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찰나의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갈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시간은 영원의 시간이다. 이 땅의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동안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영원히 살아갈 사람'이 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8절

교회에서 새 가족반을 진행했을 때, 우리는 '자유'라는 주제로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행위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행한 일도, 우리가 행하지 못한 일도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만들지 않게 되길 축복합니다."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영원의 시간을 사는 사람은 어떠한 행위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좋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는 나를 왜곡없이 받아들이는 존재로 인한 기쁨이다. 내 자신조차도 나를 왜곡해서 해석한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나를 왜곡없이 받아들여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기쁨이 바로 '자유'이다.


수평선 너머

영화 "바울"에는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바울은 로마 교도소장 모리셔스에게 항해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 묻는다. 모리셔스가 항해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자, 바울은 손을 뻗어 바닷물을 움켜쥐려고 해도 손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바닷물처럼 인간의 생명은 늘 사라져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삶이 끝나고 그리스도인들이 맞이하게 될 세상은 바닷물처럼 무한한 생명임을 강조하며 복음을 전파한다.


세상 사람들은 손에 쥐면 흘러내리는 물 한 줌을 위해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보이는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 이 땅 너머의 영원한 삶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불안정한 인생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물 한 줌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다.


수평선 너머, 그 영원한 삶에 초대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우리는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영원 속으로 나아간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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