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결제 안 되는 나라는 처음이라

브런치북 시리즈 <해외 직장생활, 다큐 말고 시트콤처럼> 1

by 박주영

2년 9개월 전, 중국 대학교에 임용이 결정되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연세의료원에서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내고 있었다.


낮에는 인수인계, 밤에는 논문 마무리와 특허 미팅.

퇴사 전 마지막 출근 날에도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였다.

그러고도 딱 일주일만 쉬었다.

아니, 사실 쉬지도 못했다.


편도 항공권 예약, 중국 비자 발급, 위안화 환전,
그리고 앞으로의 생존권을 캐리어 두 개에 차곡차곡 담았다.
취업비자인데도 비자가 3일 만에 나와서

“역시 나는 준비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비행기로 단 2시간.
중국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학교에서 공항 픽업,
교수 아파트 입주, 첫 출근,
그리고 교수식당에서 첫 식사까지 모든 게 술술 풀렸다.


현지 휴대폰 개통, 은행 계좌 개설 같은 개인 업무는 조금씩 정리해 나가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출근 5일 만에,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학회 발표 요청이 들어왔다.

연예인 같은 벤을 타고 출장 떠난 나는
호텔에서 식사도 잘하고, 발표도 깔끔히 마치고,
생수 한 병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중국 생활 첫 사비 결제의 순간.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은 카드 단말기를 찾지도 않고 말했다.

“카드 결제 안 돼요.”
…?
편의점.jpg

미국 출장도, 유럽 학회도,
일본 여행도 문제없었던 나의 카드인데?

직원은 계속 말했다.

“현금요? 거스름돈이 없는데요.”


지하철역도 아니고, 재래시장도 아닌
1선 도시 5성급 호텔 아래 편의점이었다.

그때 뒤에서 등장한 행정 직원.

“여기서는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써요 ㅎㅎ 제가 사드릴게요.”


순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준비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나의 허당이 들킨 순간.


해외 경험 많다고 자부했지만
이곳의 속도는 그 사이 더 멀리 가 있었다.


그 주말,

휴대폰 번호 개통, 은행 계좌 개설, 모바일 간편 결제 등록까지
외국인 신분으로 가능한 모든 수고를 겪으며 끝냈다.

은행 직원이 내 여권을 들여다보며 인증 절차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결국 차장급이 나서서 해결해 주는 대작전이었다.

은행업무.jpg

그렇게 나는 드디어 중국에서의 생존 첫 관문을 통과했다.

위챗페이 + 알리페이 개통 완료.
그 순간만큼은 국가대표급 주류를 마신 것처럼 어깨가 들썩였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카드 결제 안 되는 나라도 있다.

그리고 나라에서
오늘도 나는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주말, 비로소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를 개통했다.
휴대폰 한 번 흔들면 결제가 되는 나라에서,
내 지갑은 여전히 한국식으로 두둑했다.

이제 생수 한 병쯤은 스스로 살 수 있다.
정도만큼은 성장한 해외 교수의 첫 결제 성공기.

물론, 그 이후로도
잊을 만하면 허당력이 어디선가 튀어나오지만
뭐 어떤가.

내 인생은 다큐가 아니라 시트콤이니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