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나라 실험실 언어로 배운 삶의 방식
“요즘 실험 잘 되어가니?”
“아직 조건 만지고 있어요.”
한국·미국·중국의 세 단어—잡는다, 만진다, 트러블슈팅이
내 삶을 다시 설계했다.
“요즘 실험 잘 되어가니?”
“아니요. 아직 조건 만지고 있어요.”
중국 의대에 부임한 첫 해, 대학원생과 나눴던 짧은 스몰토크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때 내 중국어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말의 뉘앙스만큼은 즉시 알아들었다.
아하—여기서는 ‘최적화한다’를 ‘만진다(摸)’고 부르는구나.
“예전 데이터 한번 볼까?”
“네 교수님, 이때 이런 조건으로 했는데 결과가 잘 안 나와요.”
“그럼 낮은 농도부터 높은 농도까지, 작은 파일럿 스터디 먼저 해보렴.
맞는 조건, 잡을 수 있을 거야.”
이틀 뒤, 학생은 들뜬 표정으로 노트북을 들고 내 자리로 뛰어왔다.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해봤더니 성공했어요! 이 조건에서 결과가 정말 잘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참 신기했다.
한국, 미국, 중국—세 나라에서 모두 연구를 이어온 나로서는,
그 한 문장에서 실험실 언어가 단순한 기술 용어가 아니라
그 나라가 문제를 대하는 방식,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잡는다’는 말에는 힘이 있다.
흩어지는 변수를 정확히 붙들어, 실험을 빠르고 단단하게 최적화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한국에서 과학을 배울 때 우리는 말했다.
“조건을 잡아야 해.”
그 말속에는 주도권, 속도, 정답 중심의 성취 문화가 녹아 있다.
정답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것, 그것이 곧 실력이라고 믿는 사회.
그래서 한국에서의 실험은 늘 긴장감이 있고,
일도, 삶도 마찬가지였다.
“흔들리지 말고, 정확하게. 끝까지 잡아내라.”
나는 그 엄격함 속에서 자랐고,
그 단단함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중국 학생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老师,我在摸条件 (Lǎoshī, wǒ zài mō tiáojiàn)*。”
“교수님, 지금 조건을 만져보고 있어요.”
‘만진다(摸)’는 말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다.
조건을 감각적으로 탐색하고,
조급함 대신 여유를 두고 지켜보는 문화가 스며 있다.
부딪치며 고치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고, 기다리고, 흐름을 느끼며 최적점을 찾아간다.
나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 이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삶의 속도가 조금 느려져도 괜찮다는 것도.
한국에서 단단하게 버텨온 내가
중국에서 부드러워지는 법을 배운 셈이었다.
각주: *摸条件mō tiáojiàn= ‘条件(조건)’을 摸(만지다, 만져보면서 최적화하다)
미국 연구실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기술 용어뿐만 아니라, 태도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미세한 조건 조정이 필요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We are trying to fine-tune the conditions.”
(조건을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보자.)
소규모 테스트가 필요할 때는,
“Let’s do a couple of pilot experiments.”
(작게 시험해 보고 감을 잡아보자.)
그리고 실험이 꼬이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단 한 문장이 모든 분위기를 결정했다.
“We need to troubleshoot this.”
문제의 근원을 찾아 정확히 쏘아 올려 제거하는 방식.
감정의 완급이나 체면을 따지지 않고
문제를 문제 그대로 마주하고,
해결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문화.
그 사고방식은 실험뿐 아니라
내 삶의 불안과 두려움을 바라보는 태도도 바꿔놓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걸 고치면 된다.”
냉정하지만 명료한 세계.
세 나라의 언어는
‘같은 목적’을 향하지만, 그 과정의 감정선과 태도는 아주 다르게 흘러간다.
삶에서도 우리는 조건을 잡고, 만지고, 문제를 해결한다.
실험실에서 이 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언어는 곧 사고방식을 규정한다.
그리고 사고방식은 삶의 방식이 된다.
실험실에서 조건을 잡고, 만지고, 문제를 해결하듯
우리는 인생에서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목표는 어디인가?”
“조건은 어떻게 설정해야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가?”
빠른 최적화, 빠른 실행, 빠른 수정.
속도감 있는 삶을 만드는 힘이 있다.
“지켜볼까?”
“조금 더 만져볼까?”
“지금은 이 방향이 맞나?”
상황을 부드럽게 다루며
시간을 두고 스스로에게 맞는 조건을 찾는다.
완급의 미학이 있다.
“어디가 막혔는가?”
“무엇이 나를 지연시키는가?”
“지금 제거해야 할 장애물은 무엇인가?”
감정과 체면, 상황을 앞세우지 않고
문제의 본질로 바로 들어가는 태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실험을 수행 중이다.
나에게 맞는 학력의 깊이와 직업의 무대,
지속 가능한 부의 스케일과 축적법,
가족과 행복을 지키는 시간 운영,
불필요한 소모 없이 편안함을 주는 관계의 밀도,
계절을 타지 않는 건강 루틴,
흔들려도 돌아올 수 있는 정체성의 기준…
나는 이 여섯 면을 헥사곤 인생 밸런스라고 부른다.
가족 · 건강 · 금전 · 학력 · 직업 · 관계, 그리고 그 중심에는 행복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이 여섯 면을 돌보며
잡고(정확화) · 만지고(탐색) · 해결한다(직면)를 반복해 왔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최적 조건이 조금씩 체득된다.
그리고 그 답은, 아무도 대신 찾아줄 수 없다.
실험과 마찬가지로 삶에도 정답 표는 없다.
정확히 잡아야 할 때가 있고,
부드럽게 만져보며 기다려야 할 때가 있으며,
주저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야 할 때가 있다.
결국 삶은 언어가 아니라,
이 세 태도의 균형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조건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만들어 간다’—
헥사곤의 여섯 면을 조금씩 다듬어
중심의 행복을 더 단단히 밝히듯이.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잡아야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야 하는 단단한 기준은 무엇인가?
어루만지며 탐색해야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시간이 답을 가져다줄, 조급해선 안 되는 영역은 무엇인가?
직면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 더는 미루지 않고 해결해야 할 삶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삶의 최적화 조건’은 무엇인가?
언어의 차이가 말해주는 이 철학적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향해 있다.
우리는 실험하듯 살아간다.
매일 조건을 조율하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최적 조건을 창조하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