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에 수억, 명문 의대에 들어간 뒤엔 무엇이 남았나

중국 캠퍼스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배운 한 가지

by 박주영
“연 1억씩 사교육, 고등 3년이면 3억.”
입시는 통과했지만, 그다음 교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까.


손: “우리 의대 입학한 학생들 있죠, 고등학교 시절 사교육에 연평균 1억씩 쓰잖아요.”
나: “그럼 3년이면 3억이네요. 중학교 때부터 받았을 텐데….”
손: “그러니까요. 입시가 치열하다 보니 학부모들은 아낌없이 퍼붓죠. 그런데 과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나: “어떤 점에서요?”
손: “입시에 너무 길들여져서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방금 수업한 내용을 돌발 질문으로 바꾸면 ‘모르겠다’고 하고, 겨울에 강의실이 추워도 열린 창문을 아무도 닫지 않아요. 제가 가서 닫습니다.”


중국에서 함께 근무 중인 의대 동료 손 교수와 나눈, 교육에 대한 염려의 대화였다.


입시를 통과한 뒤의 교실

대한민국만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사교육 열풍이 끊이지 않는 줄 알았지만,

중국은 인구 규모만큼 그 밀도가 더 높게 체감된다.

14억 인구, 대학입학시험 응시자만 매년 900만에 육박한다.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공교육만으로 생존이 어렵다는 인식

—많은 가정이 사교육에 수억을 쏟아붓는다.


대학입학시험을 통과해도 학사만으로는 취업 경쟁에서 불리하고,

많은 학생에게 대학원 진학이 사실상 선택이 아닌 기본 경로가 된다.

상위 일자리 다수가 석·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레 빈부 격차와 출발선의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나기도 한다.

한편으론 방대한 인구가 제조·농업·공업 등 다양한 산업에 흡수되는 현실도 공존한다.


그렇다면 수억 대 사교육비를 투자해 입시를 통과한 학생들은 어떤가.
정말 시험만 잘 보는 기계로 남는가.
내가 본 교실의 결론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은 각자 다르고, 누가 어떤 스승을 만나 어떤 지도를 받느냐에 따라 주형이 달라진다.


학력 치열 경쟁.jpg 입시경쟁·취업경쟁·사교육·학력 인플레이션


입시 다음 교실에서 필요한 것

나는 중국 의대에서 랩을 꾸리고 석·박사 지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입시를 또 통과해 들어온, 이른바 ‘검증된 똑똑함’을 가진 제자들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초반에는 실기와 실전 능력이 약했다.
나는 스텝 1부터 10까지 시범을 보이고, 논문 토론과 랩미팅으로 조건을 잡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았다.
문제가 생기면 학생들이 모두 나에게 달려온다는 걸.
나는 너무 많은 디테일을 대신 생각해 주고 있었고,
학생들은 암기와 복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나에게 오기 전에 너에게 먼저 물어라.
무엇이 문제인지 10번 스스로 점검하고,
조건을 바꿔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도움을 청해라.”


그날 이후 백지 같던 표정변화가 생겼다.
학생들은 혼자 실험을 설계하고, 논문을 읽고, 데이터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랩미팅은 ‘지시’의 자리가 아니라 ‘보고와 토론’의 장으로 바뀌었다.
자기 주도가 시작되자, 성장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나타났다.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탐색’이다

의약계열의 연구란, 거인의 어깨(지식/논문) 위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실험으로 탐색하고 검증하는 일이다.
교수는 과제를 설계하고 팀을 이끄는 사람, 동시에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다.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탐색.jpg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탐색

나의 첫 대학원생은 내가 가장 많이 혼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슬럼프를 건너 연구자로 성장하고 있다.
언젠가 밥을 먹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고.
본과 때는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지만, 대학원은 스스로 책임지기로 했다고.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는 한국의 BK21* 제도 아래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나라의 지원이 내 공부를 지탱했다.
그런데 내 제자는 대출을 지고도 나를 믿고 따라왔다.
스승의 날, 그가 꽃바구니를 들고 와 말했다.
“부족한 저를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나는 스승으로서의 다짐을 새로 했다.
데이터를 만드는 법만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법을 함께 가르치자고.


*각주: BK21(Brain Korea 21), 인적자원 강국 건설을 위한 우수 고등인력 양성 교육정책.
세계 수준의 대학원과 지역우수대학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부의 프로젝트이다.


스승의날.jpg 교수 인생 첫 스승의 날의 추억

수억의 사교육 뒤에 남겨야 할 한 가지

사교육의 크기가 사람의 크기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입시가 끝난 뒤의 교실에서 남는 승부는 ‘정답을 빠르게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끝까지 다루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잡아라: 가설·변수·기준을 정확히.

만져라: 조급해하지 말고 조건을 바꿔 보며 감각을 익혀라.

해결해라: 막혔으면 정면으로 직면하고, 원인을 찾아 지워라.


입시로 증명된 속도와 정확도 위에,

이제는 스스로 질문하고, 설계하고, 책임지는 힘을 새로 얹어야 한다.

전환을 돕는 일이 바로 교수의 역할이고,

그 전환이 성공할 때 비로소 사교육의 시간은 사회로 나가는 시간으로 환전된다.


부모에게, 학생에게, 스승에게

부모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

학생에게: 점수보다 소중한 것은 ‘내가 왜 이걸 하는가’를 잃지 않는 것.

스승에게: 정답을 주는 속도를 늦추고, 생각의 시간을 주는 용기.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적합성이고,
지식은 양이 아니라 주도권이다.


사교육에 수억을 쓰는 시대라도,
입시 다음 교실에서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연구실에서 그 한 가지를 가르치고, 배우고, 다시 다짐한다.


독자님께 드리는 질문

입시가 끝난 뒤, 당신의 교실에서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최근에 스스로 정의해 끝까지 다뤄 본 문제가 있다면 어떤 일이었나요?
그리고 그 여정에서 누가 당신의 스승이 되어주었나요—혹은,
당신은 요즘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주고 있나요?

여러분의 한 줄이, 또 다른 누군가의 다음 장을 밝힙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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