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리즈 <해외 직장생활, 다큐 말고 시트콤처럼> 3화
“학생, 혹시 그 냉면 맛있어요?”
올해 여름, 폭염이 물러갈 기미가 없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중국 대학교 근처의 한식당에서 계절 메뉴로 나온 냉면을 시켜 먹고 있었다.
교수 생활 3년 차.
이곳에서는 연구도, 강의도, 제자도 모두 익숙해진 시점이었는데—
갑자기 식당에 들어온 두 명의 중국 여학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친근한 말투로.
나는 한 입 가득 냉면을 꼭꼭 씹으며
그저 씩 웃고 손으로 ‘따봉’을 들어 보였다.
그녀들은 내 추천을 믿고 바로 냉면을 주문했다.
중국에서는 교수라는 명함을 잠시 내려놓고 돌아다니면
나는 ‘학생’으로 더 자주 불린다.
그리고 나는 36살에도 여전히 그 호칭이 참 좋다.
박사 졸업 이후 9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누군가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면
그 말이 이상할 만큼 나를 들뜨게 한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의미도 좋지만,
평생 학교와 연구실을 벗어난 적 없이 살아온 삶 덕분인지
내 안의 ‘학생성’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생체 시계는 조금 더디게 흐르고,
학생들과 늘 함께 지내서 그런지
청춘이 내 곁에 오래 머무는 느낌도 있다.
돌아보면,
첫 대학교이자 첫 직장이었던 모교를 떠나
결국 홀로서기를 택했던 가장 큰 이유도 결국 ‘성장 효능감’이었다.
그 어떤 훌륭한 스승님 밑이라도
연구조교수까지 승진하고,
나만의 연구 아이디어로, 연구책임자로 국가 연구비를 따낼 실력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스승의 연구실은 더 이상 나에게 ‘성장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잘 배워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는 영원한 ‘제자’였다.
스승님의 명령에 따라 반복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
나의 실력보다 훨씬 좁아진 자유도.
그리고 그 조용한 균열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에 자연스럽게 ‘한 장’을 넘기게 했다.
스승님 그늘에서 계속 있으면,
그만큼 네 기회비용이 낭비되는 거야.
너만의 니치를 찾기 바라.
선배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너의 성과면 충분히 전임교수 임용 가능해.
기회는 타이밍이야.
스승님 그늘에서 계속 있으면, 그만큼 네 기회비용이 낭비되는 거야.
너만의 니치를 찾기 바라.”
그 말이 나의 인생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길을 만든다.
귀여운 '냉면 듀오'와 달리,
현실의 나는 학생이 아니라
연구자이자 교수로 이곳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다.
전문직으로 산다는 건 평생 공부를 뜻한다.
초고속으로 바뀌는 세계의 지식 트렌드를
독학으로든, 논문으로든, 학회로든, 혹은 AI로든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 한다.
홀로서기 이후 나는 알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연구과제 책임자의 자리, 연구팀의 리더 자리, 학위논문 지도교수 자리, 강의실의 교수 자리,
서류에 남는 서명 하나가 나의 하루를 엄격하게 빚는다.
책임은 커지고, 자가검열은 일상이 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길을 잃는다.
사람이 길을 만든다.
직함이 내 루틴을 세운다면, 선택은 내 진로를 연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지식 몇 줄이 아니라,
내 연구를 냉정하게 짚어줄 새로운 스승과 귀인,
그리고 내가 직접 고르는 원칙의 경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리가 요구하는 기준을 존중하되,
그 자리에 갇히지 않기 위해 내가 만든 길을 걷는다.
올해 초, 설 연휴.
모두가 고향을 찾을 때
나는 중국에 남아 국가 연구비 연구계획서를 쓰고 있었다.
부모님이 “혼자 있지 말라”며 잠시 들르셨다.
한국에서는 수억 원대 연구과제의 책임자까지 맡았던 중견 연구자지만,
중국어로 학술 문서를 쓰는 일은 또 다른 산이었다.
제2외국어 실력이 좋아도,
학술 문장 하나하나를 현지 심사 기준에 맞춰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A4용지 4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열여섯 번 수정하고 나서야 초고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곧장 연구과제 수주 경험이 풍부한 중국 교수에게 냉철한 피드백을 요청했다.
잠시 뒤 전화가 왔다.
“박 교수님, 연구 디자인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중국어 문장이 조금 어색해요.”
나도 웃으며 받았다.
“그럴 수밖에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목표가 ‘현지 심사 납득’이라면, 제가 더 배워야 할 부분이 있겠죠.”
그는 부드럽게 맞장구쳤다.
“맞아요. 이미 훌륭해요. 연휴 지나고 문장 결을 함께 더 다듬어봅시다.”
옆에서 통화를 듣던 우리 엄마가 못 참고 바로 국제 스파클링 응원을 날렸다.
“Tlqkf... 어이가 없구먼.
외국인이 중국어 그 정도면 잘 쓴 거지!
지가 한국어로 한번 써보라고 해봐! 어디 그렇게 잘 쓰나!
드디어 저것들 보다 약한 걸 찾아서 신났구먼.”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엄마, 칭찬받으려고 도움 요청한 게 아니잖아요.
연구비 따야 하니까 냉정한 피드백이 필요하고요.”
엄마의 돌직구 덕분에 순간 긴장이 풀리며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확인했다.
나는 이곳에서 현지 동료들보다 몇 배 연봉을 받는 교수이면서도,
동시에 등록금 면제 유학생처럼 산다.
수익은 내 통장으로, 학습은 내 자존으로.
실속은 챙기되, 현지와는 따지지 않고 협업한다.
중국 현지 동료들은 전문 중국어에만 강하고, 영어는 업무 현장에서 덜 익숙한 경우가 많다.
나는 영어·한국어·중국어를 가교처럼 이어 상황에 맞춰 통역·설명을 덧댄다.
내가 영어 강연을 하면, 요청에 따라 핵심을 중국어로 다시 정리해 주고,
회의 때 현지 동료가 영어 의학 용어가 막히면 현지에서 쓰는 표현으로 슬쩍 업데이트해 전달한다.
때로는 답답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과정이 바로 나를 새로운 주형으로 달구는 용광로라고 믿는다.
낮에는 과학자로 현장을 지키고, 밤에는 학생으로 언어와 문장을 다시 배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길을 만든다.
36살에도, 나는 여전히 ‘학생’이라는 말이 좋다.
그 말에는 나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 평생 성장 효능감을 갈망하는 사람.
오늘이 2025년 12월 6일,
2017년 2월 박사학위 수여로부터 곧 9주년이 된다.
최종심사 통과(2016년 12월 8일) 이후 제도상 나는 ‘학생’이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도 그 호칭을 가장 사랑한다.
‘학생’이라는 말은 여전히 나에게 기쁨과 설렘,
내 안의 불씨를 다시 살려주는 에너지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은, 배움으로 살아가는 나를 조용히 축하하는 기록이다.
9년 전과 다르지 않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자라고, 다음 산을 향해 걷는다.
호칭은 신분이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을, 이 계절의 나에게 다시 새겨 둔다.
당신은 언 ‘성장 효능감’을 느껴보셨나요?
어떤 경험이 여러분을 한 단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나요?
그리고 인생의 갈림길에서,
당신에게 꼭 필요한 조언과 용기를 건네던 그 한 사람—
여전히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나요?
문득 그런 생각도 듭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참 어른으로 살았을까?
누군가의 길 위에 작은 등불 하나라도 되어준 적이 있을까?
아마 그래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