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한국 모교를 떠났을까

연세대에서 중국 의대로 – 떠남의 이유

by 박주영


“왜 떠났어요?”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후학을 양성하는 의대 교수가 되고 싶어서 박사 공부를 했으니까요.”


나는 학부에서 약학을 전공했지만, 석·박사 과정은 의대에서 밟았다. 사실 외과의사가 되고 싶어 의예과에 합격했었으나, “여자가 수술방에서 살면 고생한다, 약사가 더 낫다”는 어머니의 고집으로 결국 약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약사라는 직업은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는 MD 대신 PhD를 선택했고, 언젠가 교수가 되리라 다짐했다.


연세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강사·연구조교수로 6년을 보냈다.

그동안 세계 최상위 학술지인 CNS(Cell, Nature, Science) 자매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연구책임자로서 한국연구재단 중견 연구과제에도 선정되었다.

30대 초반의 연구자로서는 탄탄한 성과였다.

그러나 삶은 숫자와 업적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교수이지만 계약직 이었다


비전임교수, 즉 연구조교수라는 직함은 본질적으로 계약직이다. ‘머무를 수 없는 자리’였다. 계약직의 불안정, 모호한 승진 체계, 정년 없는 미래. 그 자리에 서 있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내 앞날의 그림자를 보았다. 노력과 헌신이 무색하게도, 그들의 삶은 어느 순간 정체된 듯 보였다.


게다가 나는 MD가 아니었다. 같은 연구 성과를 쌓아도, 서울의 의대에 전임교수로 임용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지방대학의 길도 열려 있었지만,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대학이 늘고 있다는 현실은 냉혹했다.


정년이 보장된 전임교수가 되었다


그 무렵 중국 의과대학에서 전임 부교수 제안을 받았다.

정년이 보장된 자리, 연구비와 해외 인재 보너스, 대학원생을 지도할 수 있는 권한까지. 한국에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나는 ‘안정된 오늘’보다 ‘확장된 내일’을 택했다.


중국에서의 첫 해는 숨 가쁘게 흘렀다. 연구실을 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제도와 언어에 적응하는 하루하루가 전투 같았다. 학생들의 실험 경험이 부족해 대부분의 실험은 내가 직접 완성해야 했다. 겉으로는 성공적인 이주자처럼 보였지만, 내면은 달랐다.


외국인으로 산다는 건 언제나 제약과 긴장을 동반한다. 행정 절차 하나하나가 장벽이었고, 연구 과제 신청조차 언어와 인맥이라는 벽 앞에서 힘겨웠다.


금의환향을 소망한다


언젠가부터 사소한 일상마저 한국을 그리게 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단순해진 소비와 문화생활, 집과 학교만 오가는 반복된 루틴. 몸은 점점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돈은 모였지만, 그리움은 모아두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나는 왜 여전히 한국, 특히 모교로 돌아가고 싶을까?”


겉으로는 더 화려해진 이력과 조건을 가졌지만, 그 속에서 나는 ‘뿌리’를 그리워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모교라는 공동체에 대한 애착은 연구 성취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떠남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더 빨리 독립했고, 타국에서의 경험은 내 시야를 넓혔다. 무엇보다 자기 관리라는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았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고, 한국 책을 읽으며 모국어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일기장에는 언제나 이렇게 적힌다.
“성공적으로 한국으로 금의환향하기 위해 내가 오늘 해야 할 일들.”


임경선 작가는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애초에 완벽한 선택, 완벽한 확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패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계속 스스로에게 인생 결정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귀환이 곧 한국으로의 복귀를 뜻하는지,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의 삶을 더 깊이 살아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떠남 이후 이어지는 이 고민 자체가 내 삶의 중요한 서사라는 사실이다.


안정 대신 이주를 택했던 30대의 선택.
그 선택이 나를 흔들리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쓰게 했다.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떠남의 이유를,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귀환의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