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서 더 자유로워졌다

해외 이주가 내게 남긴 단순함의 힘

by 박주영


세상은 경력직을 사랑하고, 과학자는 존중을 원한다


얼마 전, 송익호 전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정년퇴직 후 중국 전자과학기술대학(UESTC)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2023년, 나 역시 중국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기에 반가움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인재 해외 유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해외 기관, 특히 중국은 연구비와 처우, 제도적 안정성을 아낌없이 보장한다. 연구자들은 그곳에서 비로소 존중받으며,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깊이 파고들 수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 출신의 동료들은 미국, 유럽, 중국으로 흩어졌다. 유럽 제약회사로 간 친구, 미국에서 교수로 정착한 선배, 그리고 중국 대학에서 자리를 잡은 나까지.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인재를 길러냈지만, 그들을 오래 품어줄 토양은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해외로 이주한 삶, 정말 만족스러운가요?”


사랑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아진 것들


나는 여전히 한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사랑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중국 대학에서 전임교수로 지내며 교육자와 연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지만, 내 정체성의 뿌리는 언제나 모국에 있다.

낯선 간판과 익숙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언어와 음식, 그리고 청춘의 추억이 담긴 신촌이 자꾸 그리워진다.

2023년 봄, 해외 이주 전 청춘의 기억- 신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랑하지 않음’이 내 삶을 더 단순하고 자유롭게 만들었다.


불편함이 준 선물 – 절제와 집중

중국에 와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낯설고 불편한 음식이었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외롭고 허전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외식과 배달이 줄자 자연스럽게 집에서 한식을 직접 해 먹게 되었고, 필요한 만큼만 먹으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회식이 거의 없는 것도 큰 선물이었다. 그동안 피곤한 웃음 뒤에 가려졌던 진짜 나의 시간을, 이제는 온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불편함 속에서 절제와 집중을 배우며, 나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의존 대신 독립 – 자기 효능감의 힘

외로움은 처음엔 두려웠다. 하지만 그 고요한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독립을 배웠다.

20대부터 헬스장과 필라테스를 전전하며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새벽마다 넓은 내 집 거실을 운동실 삼아 스스로와 약속을 지키며 몸을 움직였다.

혼자 꾸준히 해낸 시간들이 쌓이자,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생겼다.

연구에서의 좌절조차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이 고독 속에서 길러진 선물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나를 돌볼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 그것은 외로움이 준 해방감이기도 했다.


덜 갖는 삶 – 필요만 남긴 선택

한국에서의 일상은 늘 소비와 연결되어 있었다.

출퇴근길 카페의 아메리카노 한 잔, 기분 전환 삼아 들르던 올리브영 쇼핑. 작은 소비들이 습관처럼 이어졌지만, 사실은 마음의 피로를 덮기 위한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는 그런 습관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익숙하지 않아서 시작된 절제가, 어느새 내 삶의 선택이 되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자 삶은 훨씬 가벼워졌고, 덜 갖는 편안함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소비 대신 남은 여백에는 책과 연구, 그리고 나를 단련하는 즐거움이 자리 잡았다. 덜 갖는 삶이 주는 자유가 이렇게 큰 줄은, 여기 오기 전엔 알지 못했다.


결핍이 풍요로 변하는 순간

해외 이주는 나에게 낯선 역설을 가르쳐주었다. 불편함은 때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핍은 오히려 삶의 자리를 넉넉히 비워주었다.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 얽히지 않아도 지켜낼 수 있는 관계의 가벼움, 덜 갖고도 더 깊이 누릴 수 있는 자유. 그것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풍요를 이루었다. 결국 깨달은 건 단순하다. 채워 넣는 삶보다 비워내는 삶이 더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그 자유 안에서야 비로소 진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핍이 때로는 풍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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