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서 온 뜻밖의 선물
어느 날 문득, 잊고 있던 과거가 편지처럼 내게 도착했다.
얼마 전, 사학연금 정산을 받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연금이라 더욱 선물처럼 다가왔다.
20대 후반부터 박사 후(post-doc) 과정으로 시작해 연구조교수로 근무했던 모교에서의 시간이, 몇 년의 노고를 기억해 주는 작은 보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퇴직 당시 이미 퇴직금을 받았기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는데, 연금이라는 형태로 과거가 현재를 위로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시절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마음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그 시절 나는 연구조교수였다. 비전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리였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강의하고 연구했다. 낮에는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고, 밤에는 이직 준비를 했다. 재직 중에는 티를 내면 안 된다. 직책에 대한 책임감과,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불안이 동시에 나를 조였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랐지만, 연구 성과가 무르익을 즈음 운 좋게 전임교수 임용의 기회를 잡았다. 결국 나는 공백기 없이 해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단 하나였다. 학자의 길은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서도 자기 신념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그 시간은 불안과 희망이 동시에 뒤엉켜 있던 고비였고, 지금은 하나의 귀한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처음부터 돈을 좇을 생각은 없었다. 학부 약대 시절, 평생의 꿈은 신약 개발이었다.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구할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연구자의 삶은 언제나 돈과 얽혀 있다. 실험을 위한 재료비, 논문 출판비, 특허 출원 비용까지—모두 자본이 필요하다. 연구책임자는 끊임없이 연구비를 확보해야 하고, 그 돈으로 연구실을 유지하고 제자를 키워낸다. 교수의 업무는 결국 학문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돈을 끌어오고 관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수의 삶은 일종의 ‘연구 사업가’와도 같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다르다. 사업가는 이윤을 남기지만, 학자는 성과를 지식과 명예로 환원한다.
그러나 연구자의 삶은 결코 ‘돈벌이’가 될 수 없다. 논문 한 편에 투자되는 수년의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금전적 보상은 턱없이 적다. 만약 돈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학자의 삶은 곧 불행으로 기울고 만다.
한때 나도 흔들린 적이 있었다.
서울의 아파트 값은 평생을 일해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연예인이나 사업가의 수입과 비교하다 보면,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회로에 빠지면 끝없이 불행해질 뿐이었다.
이 불행의 회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학문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서울을 떠나 해외 대학을 선택했다. 돈 때문에, 집 때문에, 학자로서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나는 교수 학술상을 받았다. 상금은 연봉의 몇 배에 달했지만, 기쁨은 금액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걸어온 연구의 길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더 값졌다.
그 순간, 대학원 시절 스승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을 받고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게 때문에 애처로워 보였던 그 모습. 지금의 나 역시 그렇다. 학자로서 자랑스럽지만, 여전히 가정을 꾸리지 못한 30대라는 사실이 애처롭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학자의 숙명이라는 것을.
돈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보람이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밝혀내는 순간, 제자와 함께 연구의 성과를 나누는 순간, 환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 이것이야말로 학자가 좇아야 할 명예다.
나는 앞으로도 우직하게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거창하게는 인류의 건강을 위한 신약을 만들고, 소소하게는 연구와 공부가 재미있어서.
결국 학자가 좇아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세상에 남기는 지식과 그 지식을 증명하는 명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