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1부|해외에서 한국을 빛내고 싶은 과학자
내부 사정으로 12월 7일 예정이었던
연말 모임이 취소되었습니다.
학교 인사과의 호의... 나에게는 섬세한 압박... 특히 올해 연말에는 학교·정부 차원에서 마련된 ‘미혼 여성 교수 × 몇 스타 장교급 군의관’ 만남 자리에서 나를 1순위로 추천했다는.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지금 커리어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정말 두려웠던 것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삶의 뿌리가 이 나라에 묶이는 미래의 시뮬레이션이었다. 중국 군 장교와 인연을 맺는 순간 나는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이 나라에 ‘묶이게 된다’.
지난주 일요일 글을 올릴 때까지, 나는 그 모임에 참석 등록을 하지 않았다.
나는 조직의 규율을 지키고 업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다.
상사의 지시를 성실히 따르고, 맡은 과업은 끝까지 완수한다.
좋아서라기보다, 떠넘기기와 회피를 나의 원칙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인’은 사적 영역이다.
공사 구분이 분명해야 직장이 건강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당당히 거절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오래 불편했다.
일을 거절한 것과 같은 죄책감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국적이나 문화, 커리어의 욕심, 마음속 벽을 떠나서—
그 모임에 대한 나의 직감은 분명했다.
개인의 행복은 각자의 리듬으로 찾아가는 것이고,
사적인 만남은 내가 고르는 시간과 방식으로 여는 게 맞다.
누군가에겐 그런 자리가 좋은 인연의 통로일 수 있다.
다만 나에게는 삶의 뿌리와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선택지이기에,
공적 권유로 시작되는 사적 만남은 내 기준과 맞지 않는다.
나는 일로 맺는 의무와 사랑으로 맺는 선택을 분명히 구분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감사히 보류했고, 나의 타이밍과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며칠 전, 공지가 왔다.
“내부 사정으로 연말 모임 취소.”
그 순간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조직의 권유는 멈췄고, 내 직감은 맞았다.
제안은 지나가고, 기준은 남는다.
나는 내 타이밍을 따른다.
스물대여섯의 나에게 선배가 해준 한 문장이 떠올랐다.
“네 마음이 중요하지.”
그 문장은 타인의 기대보다 내 내면의 기준을 신뢰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서른여섯의 지금, 내 글에 달린 작가님의 댓글이 등을 밀었다.
“누군가의 기대를 떠안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리듬과 신념을 따라 나아가는 한 사람의 주체적인 여정으로 보입니다.”
그 문장은 남이 정한 트랙이 아닌, 내가 정한 템포로 걸어가도 된다는 확신을 건넸다.
그래서 나는 조직의 기대를 떠안아 ‘거부하지 않음’을 택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리듬과 신념을 근거로 ‘거절’을 선택한 사람이 되었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비워야 할 것을 비우자 가야 할 길이 오히려 또렷해졌다.
나는 지난 삶을 기록한다.
독자의 공감과 울림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나 자신에게 쓰는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흩어진 생존의 기억들,
해외 직장생활 속에서 뒤엉킨 감정과 생각들을 문장으로 가지런히 놓아 보니,
막막하던 미래는 길이 있는 풍경이 되었고, 나의 확신은 날짜와 계획을 갖기 시작했다.
브런치북 <나는 여전히 한국을 빛내고 싶다> 1화부터 22화까지,
왜 내가 한국 모교를 떠나 전임 교수 임용을 위해 중국을 선택했는지,
의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십여 년의 준비,
해외 현장에서 쌓아 올린 커리어의 확장과 지식의 성장,
그리고 우정과 사랑,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귀소 본능을 담았다.
과거에 대한 회고와 현재의 신념을 주 2화로 꾸준히 쌓아 올렸다.
브런치북의 연재 용량은 총 30화.
이제부터 23화~30화는 매주가 아니라,
1–2년에 걸친 ‘후일담 1~8화’로 완성해 갈 생각이다.
그리고 후일담 1화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간절히 원한다면, 목표를 향해 작은 실천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
직감과 결단으로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필요한 곳에 시간을 집중하면,
원하는 현실은 결국 날짜와 서명을 갖게 된다.
30화 마지막 장에서 나는 이렇게 적고 싶다.
“한국으로 금의환향한 전임 교수로서,
혹은 해외에서 탄탄한 국제 협력과 연구 성과로
한국 과학계를 빛내는 과학자로서,
이 브런치북을 완성합니다.”
그날을 향해, 오늘 나는 거절의 문장을 택했다.
멈춰야 할 때 멈추었고,
그래서 가야 할 길이 더 분명해졌다.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쏟아야 할 노력과 견뎌야 할 고통, 그리고 사람 사이의 섬세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선택 앞에서 흔들리지만,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하나씩 장애물을 넘어섭니다.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오릅니다.
“그 일이 힘들기 때문에, 당신은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다.”
오늘 저는 답답했던 고구마 전개를 시원하게 틔워 준, 작은 사이다 후일담을 나눴습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고, 갈 때 더 정확히 가기 위해서였죠.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당신은 어떤 순간에, 어떤 ‘장애물’ 앞에서 정면 돌파를 선택하셨나요?
그때의 문장 한 줄, 마음의 호흡 하나를 댓글로 남겨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길을 밝힐지도 모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각자의 리듬과 신념으로, 다음 장에서도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