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장생활, 다큐 말고 시트콤 · 크리스마스 특집
어제 하루 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도시의 소음이 푹신한 이불로 덮이듯 잦아들고,
캠퍼스 길목마다 발자국이 천천히 새겨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혼자 걸었습니다.
사각—사각—눈 밟는 소리가 마음의 속도를 낮췄습니다.
호수는 흰 가장자리를 두르고, 가지마다 얇은 설탕 옷이 입혀졌습니다.
그 풍경 앞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의 겨울, 모교의 눈 쌓인 돌담, 설악의 능선…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 정을 나누어 온 동료의 얼굴.
오랜만에 설경 사진을 첨부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캠퍼스가 이렇게 하얗습니다. 당신 생각이 나네요.”
답장은 곧장 왔습니다.
“박 교수님, 혹시 저 보고 싶었어요?”
“당연하죠.”
잠시 뜸을 두더니 기쁜 소식.
“임신했어요. 입덧이 심해 숨어 지냈어요.”
“축하해요! 몸 먼저 챙기고, 편해지면 우리 밥 먹어요.”
눈은 가끔, 소식을 데려옵니다.
멀어진 마음을 다시 이어 붙이고,
서로의 계절을 조심스레 확인하게 해 줍니다.
연세대 캠퍼스의 긴 그림자,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포석 위의 눈,
집에 들어서면 퍼지던 국물 냄새.
먼 곳에서 일하고 살아도,
마음은 그 나라의 겨울에 늘 머무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설경을 브런치에 적어 독자님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은, 함께 볼 때 비로소 완성되니까요.
올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 저는 작은 확인을 끝냈습니다.
다듬어 제출한 보고서, 여러 번 고쳐 쓴 문장, 조금 더 단단해진 생활의 리듬.
크게 떠들지 않아도 되는 성취들이 조용한 온기가 되어 책상 위에 남았습니다.
오늘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짧은 안부 한 줄을 보내 보세요.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 있다면, 함께 볼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마음이 추울 때는, 기억의 국물을 데워 드세요. 그릇은 우리 각자의 하루면 충분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평안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하얀 길 위에서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계절을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