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세브란스 북클럽이 내게 남겨준 인생수업

시리즈 〈세브란스 북클럽이 남겨준 인생수업〉 1화

by 박주영

지난주, 서울 ‘내 집’에 다녀왔다.

딱 다섯 날. 5년을 품고 살았던 전셋집을 정리하며, 나는 사람보다 집과 더 오래 마주 앉아 있었다. 가족과 오랜만에 밥을 먹고, 병원에서 검사도 받고, 미용실도 다녀오는—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정들을 조용히 해치웠다.

모교 연세대 의대에 계신 스승님을 뵙는 약속 말고는, 누구와도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리’는 바쁘게 움직이는 일인데 마음은 자꾸 고요한 쪽으로 기울었다.
매일 짐을 싸고 박스를 접고 먼지를 닦으면서도, 업무에 필수인 연구계획서 작성과 세미나 발표 준비는 멈추지 않았다. 루틴처럼 홈트 운동을 했고, 독서도 했고, 다이어리에 글도 썼다. 내 생활은 늘 그렇듯 “흔들리지 않는 것들” 위에서 버텼다.


지난 연재 시리즈의 에필로그를 발행한 이후, 나는 서울 집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내 집과 하루라도 더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괜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결국 책으로 하루를 열고 책으로 하루를 닫았다.
아침에는 알라딘 ‘양탄자 배송’으로 7시도 되기 전에 책이 도착했고, 저녁 9시에는 교보문고 온라인 배송으로 또 책을 받았다. “이 집에서 받는 마지막 책 배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알라딘 박스에 그려진 ‘안녕’ 인사하는 고양이 그림만 봐도 마음이 아려왔다.

어른이 된다는 건, 별것 아닌 장면에 자꾸 울컥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책과 독서는 단조로운 해외 생활을 다채롭고 지혜롭게 해주는, 내게 가장 성실한 동행이다.
세브란스 북클럽에서 받았던 책을 다시 꺼내 읽기도 하고, 새로 구입한 책을 읽고 감상평을 남기며, 그 문장들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 해왔는지 기록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연재 시리즈의 이름을 〈세브란스 북클럽이 남겨준 인생수업〉으로 정했다.


서울 내 집에서의 마지막 날 밤, 나는 외부의 방해 없이 고요히 책을 읽고, 다이어리에 마음을 담아 감사일기를 썼다. 똑딱똑딱 시곗바늘 소리 말고는, 종이에 ‘쓱싹쓱싹’ 펜이 지나가는 소리로만 방이 채워졌다.

그 공간은 묘하게도, 내 인생의 ‘중간 기착지’가 아니라 ‘출발지’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나는 탁상시계 하나를 캐리어에 넣었다.
스물넷, 첫 월급으로 샀던 그 작은 시계. 그리고 새로 주문한 책들까지 꾹꾹 눌러 담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10년 넘게 써 온 시계는 여전히 한국시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그 바늘을 중국시간으로 한 시간 늦춰 맞췄다. 사소한 행위였는데—그 순간만큼은 ‘내 몸의 시간’도 함께 조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은 나라를 이동하는 게 아니라, 시간대를 갈아 끼우며 삶의 모드를 바꾸는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내려 저녁에 도착한 나는 짐을 풀고 다시 세미나 준비를 해야 했다.
돌아오자마자 발표가 기다리고 있는 ‘일복 터진 사람’에게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떠나온 집에 대한 아쉬움에 오래 잠길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마음은 때로, 바쁨이라는 둑이 있어야 무너지지 않고 흘러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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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과 마음가짐에 대한 독서목록

설 연휴를 앞둔 주말이라 다행이다.
짧디 짧은 2월이지만, 서울을 떠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직후가 곧바로 출근으로 이어지는 일정이 아니라 ‘연휴’라는 쉼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이번 귀국에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는 준오헤어에서의 대화였다.
5년 전 그 동네로 이사 온 이후 줄곧 내 머리를 맡아준 담당 스타일리스트. 나이도 비슷한 여자 선생님이라 대화가 편했고, 생활의 꿀팁도 자주 나누던 사이였다.


“선생님 혹시 손목닥터 9988 앱 알아요? 제가 지난 5월에 머리 하러 왔을 때 미용실에서 잡지 보고 시작했거든요. 매일 8천 보 이상 걸으면 포인트가 쌓이잖아요. 저 5만 포인트 모아서 서울페이 5만 원으로 바꿔서 이번에 여섯 끼니 해결했지 뭐예요~”


“아 진짜요 고객님? 저는 여기 계속 살았어도 몰랐네요, 아하하. 추천 감사해요! 근데 저는… 매일 퇴근하면 집에 누워 있거든요. 릴스 보다가 출출하면 잠이 안 와서 자꾸 배달앱 켜고… 또 시켜 먹는 저를 발견해요. 하아 살쪄서 어떡하나 몰라요.”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단하게 일한 자신을 가장 빨리 위로해 주는 건 ‘맛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식사로 채우는 건 위장뿐인데, 우리는 자꾸 마음까지 그릇째 채우려 한다. 들어가서 또 시켜 먹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배’가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도 그런 날들이 있었으니까.


나는 조심스레 이렇게 말했다.
“그럼… 퇴근길에 사 먹고 들어가면 어때요?”
“그렇게도 해봤지요. 근데 들어가면 또 시켜 먹게 돼요.”

그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습관’이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종종 환경과 리듬의 문제라는 걸. 그리고 그걸 알면, 나를 덜 미워하면서도 조금씩 고칠 수 있다는 걸.

환경을 바꾸면, 고치고 싶은 ‘나쁜 습관’도 더 수월하게 교정될 때가 있다.

나는 중국으로 이직한 뒤 3년 동안 단 한 번도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았다.

외식도 약속이 있을 때 1년에 세 번 정도뿐. 나머지는 직접 요리해서 먹고, 야식은 당연히 없다. 물론 환경이 도와준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바꾸고 싶다”는 마음과, 그 마음을 매일의 선택으로 옮기는 끈기였다.


7년 전엔 동문이 운영하던 피부과에 다니며, 대기실에서 우연히 읽었던 박용우 선생님의 『음식 중독』이 큰 도움이 됐다.
그 이후로는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G. 해머튼의 『지적 생활의 즐거움』, 피터 홀린스의 『자제력 수업』을 읽고 내재화하며 생활에 실천했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습관, 매일 독서하고 기록하는 습관, 성인이 되어도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결국 내 삶을 지켜주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런 작은 ‘반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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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의식주, 그리고 돈에 대한 독서목록

책의 내용을 빌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더 정리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

왜 나는 한국의 거리는 “걸어도 걸어도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중국의 거리는 그렇지 않을까?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힌트를 얻었듯,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이 숨 쉬는 방식과 마음의 결을 바꿔 놓는다.


또 몇 달 만에 서울에 돌아와 길을 걷거나 집 밖을 나가기만 해도, 출퇴근하는 청년들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명품이 아니라, 무채색인데 단정하고, 꾸미지 않은 듯 멋스러운 그 감각. 그래서 중국 현지 대학에서 종종 듣는다.
“한국인들은 진짜 옷을 잘 입는다.”
이 감각을 떠올리면,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람은 옷을 입지만, 동시에 옷이 사람의 태도를 만든다.


그리고 나는 전 시리즈에서 “중국에서 한 달 생활비 한화 6만 원으로 산다”라고 쓴 적이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검소했지만, 그 정도로 소비를 거의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나는 ‘안 쓰는 대신, 귀국할 때 몰아서’ 필요한 것을 산다. 그중에서도 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기초화장품, 상비약, 프로바이오틱스, 필기류 같은 것들을 한꺼번에 챙겨 간다.

교수라는 직업은 방학이 있어 상대적으로 시간의 숨통이 트인다. 그 시간에 한국으로 돌아와 집에서도 업무를 보고, 가족과 스승님과 친구를 만나 모국어로 감정을 꺼내 놓고, 입맛에 맞는 한식을 먹는다.
어쩌면 그 시간이야말로 1년 중 가장 “나답게” 숨 쉬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 붙일 독서 목록은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 모건 하우절의 『돈의 방정식』 같은 책들이다.

결국 삶은, 성취와 행복을 따로 챙기는 것이 아니라 두 축의 균형을 스스로 설계해 가는 일이니까.


이번 시리즈는 차근차근,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또 새로운 책들도 읽어가며, 그 문장들이 내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책은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삶을 다시 살아낼 ‘방식’을 빌려준다.
내게 세브란스 북클럽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