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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May 10. 2024

미국 간호사, 성장이란

Happy Nurse's Week

한국에서 이민을 온 가장 큰 목적은 '도망'이었다. 서른 중반의 여성, 간호사가 싫다고 하면서 일은 해야 해서 병원은 계속 옮겨다녀 만년 신입 직원 신세. 이정도 나이가 찼으면 결혼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닥 괜찮은 매물도 아닌 상태인 나. 비혼주의자라고 외쳤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비혼이라기 보다는 결혼 불가가 아니었을까 싶은 수준.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보니 그래도 그 구색에 맞게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데, 게 중 몇몇은 이혼도 하고 몇몇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꼴을 보니, 친구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어느 것도 내 미래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도망을 택했다. 것도 아주 괴상한 방법으로. 

미국에서 간호사를 하면 영주권을 준다는 말에, 부모님 잔소리 피하고 싶어서 그 고생을 해서 몇 년의 수속기간을 거쳐 미국으로 왔다. '도망'이 목적이었으므로, 미국에 와서 신분이 안정되면 간호사가 아닌 다른 일을 찾아볼까 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미국 병원의 근무환경과, 미국 간호사의 대우는 한국과는 아주 달랐다. 뒷걸음질 치다가 부딪친 곳이 생각지도 못한 곳이라면, 내 성정상 일단 하고 본다는 주의였다. 그렇게 미국 병원에서 만족하며 일한 지 만 10개월차, 햇수로는 2년이 된 지금 딱 그 시기가 왔다. 바로 '나 여기서 뭐하고 있지?. 하 진짜 일하기 싫다.'시기. 그러니까 사람이 가끔 일에 익숙해지고, 근무하며 3,6,9의 숫자를 만나면 갑자기 자아성찰을 하고 싶어지는 시기가 온다. 내가 바로 그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이전에는 적응하느라 얼레벌레 넘어갔다면, 지금은 조금 더 깊은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임상은 그래도 매한가지다. 나는 일반 병동에서 일하는데, 매일 환자의 대소변을 마주하고 있고, 정신과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많아서 병원 보안 요원들을 수시로 불러대고 있다. 어디나 유토피아는 없듯이, 미국의 임상도 한국의 임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런 환경이다. 그러니 나같은 외국인에게도 비자를 줘 가면서 사람을 고용하는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다. 적응기와 허니문이 끝나자, 이 모든게 갑자기 지겨워졌다. 


나의 모든 직업 윤리와 직업 철학에 대한 고찰은, 환자의 기저귀를 갈면서 항상 시작된다. 미국에 온 순간부터 여유로운 환자 비율에, 기저귀 가는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환자들이 송구스러움을 표할 때마다 "that's okay, it's my job." 이라고 하며 머슥해 하는 그들을 되려 편하게 해 주려고 했었다. 미국 환자들은 한국 환자들과 또 다르게, 마구 찡찡대다가도 원하는 것을 해주고 나면 'Thank you'라고는 반드시 이야기 해 준다. 그게 진심이건 거짓이건, 고마움의 표시는 몇번이고 해 주는 점에서 간호사 할맛 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환자가 너무 자주 간호사를 부르거나, 무리한 부탁을 하면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그 환자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니까, 너무 자주 가지 말아라. 환자도 기다릴 필요가 있다. 라고 하는데 한국의 무리한 부탁에 비하면 세발의 피 수준이다. 그리고, 간호사가 거절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응급실을 통해 온 환자가 컨디션이 안좋은데도 불구하고 자꾸 화장실을 가겠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이동식 변기를 제공해 줬었다. 이동식 변기에 앉아서도 앞으로 꼬꾸라 질것만 같아서, 기저귀를 차고 오늘 하루만 병상에 있길 부탁했으나. '네가 옆에 있으면 되잖아'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저는 환자분 말고도 다른 환자분들이 있습니다. 환자분이 대변보는 동안 계속 옆에 있어줄 순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환자는 입원 후 3시간 동안 대변을 보겠다고 6번 실갱이를 한 상태였다. 한 번 좌변기에 앉으면 10-20분은 그대로 앉아있었고, 닦아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다소 지저분한 이야기라면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다 인계시간이 다가오고, 여러 약제를 투약받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환자에게 안전을 위해서 침상에 있길 바란다고 하고, 기저귀를 채워줬다. 인계 하는 동안 콜벨이 울려도 못가고 있었는데, 인계가 끝나자 마자 환자에게 가니 환자가 나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Why did you be a nurse?"(왜 간호사가 된거예요?)

- I did not wanted to be a nurse (전 간호사 되기 싫었는데요?)


대뜸 부적절한 질문을 한 환자에게 부적절한 대답을 한 나였다. 그야말로 환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Oh, Okay. You didn't wanted to be a nurse?" (아, 응 그래요. 간호사가 되기 싫었다구요?)

"No, I did not want to be" (네 되기 싫었어요)

그리고 환자에게 왜 질문을 했으며, 도대체 무엇을 원하냐고 했다. 그제서야 환자가 간호사가 기저귀를 빨리 갈아줘야 하지 않냐며, 그럴려고 간호사가 된게 아니냐고 이야기 했다. 나는 환자에게 이게 내 일은 맞지만, 너가 그 질문을 한것은 부적절한것으로 보이며, 그 질문을 한 의도가 별로 좋지 않아보인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환자는 이게 니 일이면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식으로 아주 불편한 폭언을 했고, 나는 환자에게 당신을 위해서 지난 시간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당신의 안전이 중요한만큼 다른 환자들의 안전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나를 존중해야 하며, 그런 태도는 당신의 건강에도 지금 나에게도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와 같이 기저귀를 갈아주던 간호사도 'oh my god she's so mean'이라고 하며, 환자의 그런 태도를 꼬집었다.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 많은 돈과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한국에서 엄마 등쌀에 밀려 대학을 울며 겨자먹기로 졸업한 나와는 다르게, 이 곳의 간호사들은 공부를 잘해야 간호대학에 갈 수 있으며, 그마저도 웨이팅이 있다고 했다. 주말에 실습나온 학생들은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며, 다른 직장에 근무를 하면서 LVN이 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닌다고 했고, LVN 코스가 끝나야 RN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피와 살을 깍는 노력을 들여서 간호사가 된다고 치면 빠르면 4-5년, 늦으면 10년도 넘게 걸리는 미국에서 내가 간호사가 하기 싫었다고 하니, 환자도 기가 찰 노릇이었던 거다. 그 많은 시간과 학비를 쓴다는게, 애초에 간호사가 하기 싫은 사람이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직장 동료들 및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감있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환자의 그 말은 가뜩이나 일하기 싫은 나에게 더 깊은 의문을 가지게 만들어줬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은 이 곳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제 일이 익숙해지니 별 생각이 다드나보다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좋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따위 말이다. 세상에, 내가 한국에서는 한 적도 없는 생각을 여기와서 이렇게 하게 된다. 환자에게 진심이기만 해야할까, 일을 잘해야 할까. 동료들과는 어떻게 어울려야 할까. 앞으로의 커리어 발전을 위해서 나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이도저도 아니고 그냥 난 앞으로 뭘해먹고 살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머리를 들고 나왔다. 


미약하지만 작게나마 세워본 계획은, comfort zone을 벗어나 보는것이었다. 어느새 이곳이 comfort zone이 되어버린 나머지, discomfort zone을 찾아, 조금이라도 매일 노출시켜 보는 것이었다. 그게 스페인어 공부가 될 수도 있고, 고통스럽고 싫은 널싱 공부일 수도 있다. 


두번째는, 내가 원래 하려고 했던 목표를 찾아 다시 한번 노력해 보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 간호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는 하지만, 집세와 물가가 너무 높아서 다 내고 나면, 아껴쓰기 나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학교를 가야하는데, 학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학비를 세이브 해야하냐, 집값은 세이브 해야하냐 하고 있는 중이다. 


세번째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기다. 병원에서 일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도와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도와줘보고 싶다. 그게 후원이 되었든 봉사활동이 되든, 그걸 통해 또 다양한 인연들을 만나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미약하나마 존재의 이유를 찾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 온 지 딱 1년, 마침 또 Nurse's week로 한 주 내내 떠들썩 하다- 각종 리테일/레스토랑/카페 등에서 할인을 마구 해 주고 있다-미국으로 것도 간호사로 오게 된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등쌀 떠밀어 준 엄마한테도 좀 고마워 해야겠다. 아차 또 가정의 달이네. 5월은 여러모로 성장하는 달인 것 같다. 새순이 꽃을 피우고 만개를 위해 달려가듯. 그렇게 조금씩 꽃을 피워 갈 준비를 또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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