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첫번째 코드블루를 겪고
일전에 병원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서 글을 썼었다. 과연 내가 환자의 삶의 길이를 재단할 수 있을까. 또한, 고통받는 가족들의 자신의 부모를 위한 까다로운 요구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결과적으로 그 과정이 평생이 되진 않을 테니, 며칠이지만 마음을 다해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자고 생각을 했다. 오프 내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던 환자와 보호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시 그들의 담당간호사가 되었다. 아침부터 나는 침상 옆에 있는 보호자인 아들과 깊은 라포를 쌓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급적 자주 가서 환자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출근하자 마자부터 혈압이 떨어진 환자에게 알부민을 주고 나름 자주 그 방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사실 아침 라운딩 때 부터 환자 얼굴을 봤는데, 전보다 더 안좋아진 상태와 떨어지는 혈압에 다소 긴장이 되기도 했었다. 어쩌면, 내가 이분의 마지막 담당간호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 왠종일 옆에 서서 있는 나이가 지긋한 환자의 아들을 보면서, 보호자분도 물도 좀 드시고, 밥도 잘 챙겨드시고 힘든건 우리가 다 할테니 서서 혼자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던 차였다. 그러면서 의식이 거의 없는 그의 어머니에게 "좋은 아드님을 두셨어요. 조금만 힘내세요"라고 말씀을 드리며, 올라간 혈압에 안도를 하던 차였다.
나를 봐서 안심하셨던 보호자는 나름 나에게 알려준다면서, 어제 CNA가 체위 변경을 안해줘서 혈압이 떨어진 것 같다는 소리를 하셨는데, 모든 일들의 원인이 모두 어딘가에 있지가 않고, 혈압이 떨어진 것은 그거랑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조금 릴렉스 하고 계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쌍따봉을 치켜세우며 오케이 라고 하셨던 그분은 다행히 내가 다른 환자에게도 약을 줄 수 있도록 보내주셨고.
한 환자에게 약을 주고 나왔는데, 할머니의 심장 모니터를 보던 동료가 환자가 서맥이라고 내게 급하게 말했다. 계속 빈맥이던 환자가 서맥인게 너무 이상해서 당장 뛰어서 방에 들어갔는데, 맥은 잡히는데 얼굴이 너무나도 창백했다. 그리고 숨을 쉬지 않고 계셨다. 당장의 코드블루 상황이지만, 할머니는 Chemical code라고 해서 심박수 올리는 약만 사용하고, 심장 마사지 및 다른 생명 유지를 위한 것은 안하기로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옆에 있던 아들이 갑자기 뭐라도 하라면서 심장 마사지를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바로 full code로 바뀐 차에 코드블루 방송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 자리에 닥터가 있었던 나머지 바로 코드블루 하죠 하고 한 뒤, 보호자를 밖으로 내보내고 난 뒤 심장 마사지를 했다. 하우스 슈퍼바이저를 포함해서 온 병동 간호사들 및 ICU/ER 간호사 RT까지 모두 뛰어왔고, 어텐딩 닥터는 차분하게 상황을 지휘했다.
의학드라마와 다르게 코드블루 상황은 항상 침착하게 이루어 진다. 각자 자리에 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데, 닥터의 차분한 지휘가 한 몫을 했고, 알맞은 자원들이 제 때 튀어나왔다. 시니어 간호사는 약물을 줄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하우스 슈퍼바이저가 차팅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복명 복창하며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했다. RT(Respiratory Therapist)는 와서 인투베이션을 assist하고 있었고, 동료 간호사들은 돌아가면서 심장마사지를 했다. 원래는 약사도 같이 와서 있는데, 약사가 달려오지 않은게 의문이라고 하고 있었다. 한국과의 코드블루 상황을 비교해 본 다면, 한국은 간호사가 인튜베이션 준비를 하고, 담당간호사가 수기로 차팅을 하고 있고, 차지 널스가 모니터 및 진두지휘를 했어서 코드블루 상황에 3-5명의 간호사 인원으로 모든 것을 매니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심장마사지는 인턴 선생님들이 주로 했던 것 같다.
아흔이 훌쩍넘은 할머니를 과연 살릴 수 있을까, 심장 마사지를 하면서도 의문이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16분 만에 할머니의 맥이 잡혔고, 코드 블루 전에도 반응이 없던 할머니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 순간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동시에 하우스 슈퍼바이저가 ICU 병실을 잡았다고 했고, 가서 리포트를 주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아무 동요없이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가 이미 차트를 다 가지고 가 주었고, CNA가 알아서 침상 정리를 해서 물건을 가지고 이송해 줬으며, 누군가가 알아서 크래쉬카트를 정리하고 있었고, 누군가가 알아서 다 환자 병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you save her life"하면서 지나치게 칭찬을 해주는데, 어라 한국이랑 너무나도 다른 뒷정리에 이게 뭐지 하며 얼떨떨한 수준이었다.
그 뒤로도 하루종일 바빴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제시간에 끝낸게 기적과 같았다. 쉬프트가 끝나갈 무렵에는 시니어 간호사들이 하나같이 불러서 그래서 오늘 소감이 어땠냐고 흥미롭게 물었다. 정말 겁이 하나도 안났던게, 든든한 시니어 간호사들이 있어서였다. 다음부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이야기를 해 주는게, 정말 소중한 레슨같았다. 게 중 한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할머니가 아직 세상을 떠날 준비가 안되어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는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말 알 수 없는 삶의 길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으니, 언제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아직도 모든 상황들이 비디오처럼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환자에게 해가 되는 일인것 같았는데 여기선 사소한 것에도 이렇게 칭찬을 해주니 정말 몸둘바를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정말 감사했던건 그 순간 같이 있어준 동료들 덕분이기도 했다. 정말 다들 뭘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아무도 호들갑 떨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시니어 널스와 각 부서들이 있었고, 정말 다같이 한 목표를 위해서 환자를 ROSC 시키고 나니 밀려오는 안도감과 감사함에 어라 이 직업이 참 멋진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진짜 자신을 찾아 미국으로 온 나에게 미국간호사만큼 괜찮은 직업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 날 오후가 되어서 환자 상태를 살피던 의사와 함께 방에 들어가서 바이탈을 체크하는데, 내가 멍때리고 있다가 혈압계 커프와 기계를 연결 안한거였다. 환자가 농담으로 "너 이거 자주 안하는구나 ㅋㅋ"라고 해서 내가 "아이고 내가 이 기본적인 것을 놓쳤네 ㅋㅋ 맞어 미안ㅋㅋ"이라고 했더니 닥터가 "좀 봐줘~ 이분이 오늘 누군가의 생명을 살린 사람이거든ㅋㅋ"라며 화기애애.. 이게 코드블루가 끝난 다음의 대화가 맞나 싶을정도로 인정이 많은 사람들 정말 내 동료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