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매일 모임에 참석을 했다. 얄궂게도 쉬프트도 계속 캔슬되는 마당인데, 풀타임이 아니라 거의 파트타임처럼 스케줄이 들어가있었다. 그래서 7일 연속의 오프가 생겼지만, 가난한 나는 올 연말 그냥 집 근처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유닛파티, 연말 모임, 간호사모임, 그리고 지인파티까지 매일매일 친구들을 만났다. 한 6일 정도 했나. 갑자기 집에 오는데 덜컥 공허함이 밀려왔다. 외로움이었다.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느낀 외로움은 상당히 원초적이다. 가족이 그립고, 이런걸 다 떠나서 그냥 이루말할 수 없이 외로워진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한치 앞을 몰라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한국에 있었다고 달라질까 아니다 나는 원래 부모님과 오래 떨어져 살았고 고독과 원초적인 외로움은 늘 나와 함께 있는거라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게 깊어졌다 옅어졌다 할 뿐이지 그냥 그건 그대로 내 옆에 산소처럼 붙어 쉬는 것이었다.
간만에 느끼는 원초적인 외로운 감정이다. 랜딩해서 1년 반정도 정신없이 살아서 느낄 틈이 없었던 이 외로움. 주변에 좋은 친구들도 많고 좋은 동료들도 많은데 그들이 만나자고 해도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이 나랑 더 친해질 시간을 주라고 자꾸 가픈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디든, 여기든 저기든 그리고 손에 뭐가 잡히는대로. 그리고 지금도 무작정 아파트 옥상에 올라와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는 대낮 오후 12시다. 루프탑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정갈하고 깨끗한 조경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래 이거지. 이 고오급 아파트에 사는게 다지. 이럴려고 여기 있는거지. 그래서 내가 이 돈내고 여기 사는거지.
미국간호사, 좋은 동료들과 친구들, 고급 아파트, 성공적 이직 모두 다 거품같이 지나가면 오롯이 서 있는 나는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거지. 어떤 타이틀도 아닌 그냥 이 자리에서 뭐가 오든 가만히 받아들이는 삶. 그리고 나 하나로 뭉근하게 세상을 밀어갈 수 있는 사람. 가픈숨을 몰아쉬다 숨을 천천히 쉬어봤다. 주위도 보이고, 음악도 들리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들린다. 우울에 잠식되려다 보면 햇살이 나와서 잠깐만 나왔다 가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우울한 나도 좋아한다. 외로울 때 내가 가장 많이 창의적일 수 있는 것 같다. 이 고독과 공허함은 강한 에너지가 있다.
왠만한 감정은 다 요란하게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지금 이 감정은 이상하다. 피부결에 와닿아 숨을 내 쉴때 마다 들락거린다. 오늘은 내친김에 책까지 읽어봐야겠다. 어디선가 봤다. 외로움은 나와 친해질 시간을 가질 기회라고. 쫓지말고 멈춰보자. 눈을 감고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외로울 땐 그냥 쓰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