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생기면 흔히 겪는 문제 중 하나가 첫째 아이의 퇴행이라고 한다. 은하를 낳고 나서 우주는 동생을 미워하긴 했지만 퇴행이 오진 않았다. 그런데 동생이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우주는 퇴행 행동을 보였다. 3살 치곤 혼자 뭐든 잘 하는 은하이지만 우주 눈에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은하에게 질투가 났나보다. 우주의 퇴행 행동은 “밥 먹여줘, 옷 입혀줘, 안아줘” 3종 세트와 아기 목소리로 칭얼대는 것이었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든(아기 옹알이 같은) 말을 하면서 드러눕고 울고 짜증을 냈다. 밥 먹는 시간이면 자기를 들어 안아 식탁 의자로 데려다 달라고 했으며 밥을 떠먹여주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울었다. 혼자서도 척척 준비하던 아침 등원 준비 역시 모든 것을 엄마인 나보고 해달라 했다. 내 컨디션이 괜찮을 땐 받아주며 넘어갔지만 나도 뿔이 나버리면 우주에게 예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혼자 할 수 있잖아. 어린이집 갈 시간 다됐으니 어서 입어!”하며 우주를 혼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 진지하게 우주에게 물어봤다. “우주야, 우주는 혼자 옷도 잘 입는 5살 형안데 왜 계속 엄마보고 입혀달라고 하는 거야?”하니 “은하만 입혀주고 우주는 안입혀주니까… 우주도 엄마가 입혀줬으면 좋겠어.”란다.
사실 우주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을 우주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우주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갔다. 늘 자신은 제쳐두고 동생만 챙겨주는 엄마가 밉고 동생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이구 우리 우주 그랬쪄? 알았어 이리와. 엄마가 다 입혀줄게~”하며 우주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그 날부터 “우리 아기 이리로 와 봐. 엄마가 옷 입혀줄게.”하고 우주의 어리광을 받아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편으론 마음이 불편했다. ‘우주가 5살인데 내가 다 해주면 계속 스스로 하기 싫어하는 거 아닐까? 내가 해주는게 습관이 돼서 초등학교 가서도 옷 입혀주고 밥 떠먹여주게 되면 어떡하지?’ 우주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과 습관 형성을 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이 됐다.
그 날 밤, 신랑과 대책 회의를 했다. 신랑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듣더니 “우주가 은하한테 질투하는 거네. 우주를 예쁘다, 사랑스럽다, 귀엽다 해주다보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라며 심플하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긴, 퇴행 행동이 평생 갈 리가 없다. 몇 달 전에 했던 고민들은 전부 사라지고 지금은 또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으니. 분명 길어봤자 1달 안에 해결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린 우주에게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주기로 했다. 많이 안아주고 ‘귀엽다, 예쁘다, 사랑한다’고 계속 얘기해주기로.
아침에 일어날 때 스킨쉽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랑스런 눈빛으로 우주를 쳐다보며 말로 표현해줬다. 놀다가도 “우주 오늘 왜 이렇게 귀여워?” “우주야, 엄마는 우주가 엄마 아들이라서 정말 행복해.”하며 사랑한다 얘기해줬다. 자기 전에도 눈을 맞추고 노래를 불러주며 우주에게 엄마아빠의 사랑이 가득 찰 수 있도록 사랑을 들이부어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우주의 퇴행 행동이 조금씩 나아지고 어리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다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기 시작하면 원래 아이를 대하던 것처럼 조금씩 바꿔나갔다.
주말엔 은하를 신랑에게 맡기고 우주와 단 둘이 데이트를 했다. 키즈카페를 갈까, 멀리 놀러를 가볼까 거창한 계획을 세우다가 우주가 원하는 건 그냥 엄마와 집중 데이트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은하가 있어 방해받았던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놀이터에 가서 은하 없이 우주랑만 놀아주는 것, 우주 손 잡고 우주 발걸음에 맞춰 산책하는 것, 편의점에서 우주 좋아하는 과자 사서 얘기하며 나눠먹는 것 등 소소한 데이트를 했다. 도서관에서도 우주가 좋아하는 책을 원없이 읽어주고 나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평소 먹고 싶어했던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우주 하나를 키울 땐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은하가 태어나고 늘 동생을 챙기느라 우주가 뒷전이었기에 이런 시간이 우주에겐 필요했던 것 같다. 우주는 이 날 내게 최고의 하루였다고 말해줬다. “오늘 엄마랑 노니까 너무 행복해. 멋진 하루였어.”
엄마도 그랬어. 정말 행복한 하루였어.
시간이 흘러 한 달이 지났다. 우주는 예전보다 더 멋진 5살 형아가 되었다. 은하와의 관계도 더 돈독해졌고, 은하를 챙기고 배려할 줄도 알게 되었다. 엄마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으니 자신감도 생겼고 엄마와의 분리도 불안해하지 않고 씩씩하게 해냈다.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주며 보람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퇴행은 도약을 위한 과정이었나보다. 갓난 아기 시절 원더윅스를 겪듯, 퇴행과 성장을 반복하며 아이들이 자란다는 걸 또 한번 확인했다. 내 품에서 세상으로 한 발짝 다가간 우주야 너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