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푸드는 추억이다
떡볶이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엄마의 부엌이 아닌, 집 앞 큰 길가 낡은 천막 아래에 머물러 있다. 기름때 묻은 포장마차 안, 커다란 철판 위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검붉은 고추장 양념과 그 위를 떠다니던 매콤 달콤한 수증기.
국민학교 1학년 하굣길, 그 좁은 포장마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떡볶이를 우물대던 아이들의 뒷모습은 어린 내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풍경이었다. 주머니 속 빈손을 만지작거리며 매일 그 냄새를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해야 했던 나날들. 마침내 빳빳한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손에 쥐어졌던 날, 나는 승전고를 울리듯 동생의 손을 잡고 그 포장마차 안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단돈 100원. 플라스틱 접시에 수줍게 담겨 나온 것은 별것 없는 밀가루 떡이었지만, 입안에서 쫀득하게 감기던 그 뜨겁고 달큼한 감각만큼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박힌 사진처럼 선명하다.
나의 두 번째 인생 떡볶이는 중학교 시절, 시장 골목 어귀의 한 작은 분식집에서 만났다. 당시 그곳은 떡볶이와 김밥 등 모든 메뉴가 천 원이라 우리에겐 '천 원의 행복'으로 통했다. 떡볶이의 맛도 맛이었지만, 나를 매료시킨 건 주인아저씨였다. 한쪽 다리가 조금 불편해 걸음이 기우뚱하셨던 아저씨는, 아이들이 들어설 때마다 낡은 라디오 소리보다 더 정겨운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세월이 흘러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또 그 뒤엔 부쩍 자란 아이의 손을 잡고 그 문턱을 넘었다. 아저씨의 머리 위로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을 즈음, 나는 아이를 앞세우며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저 중학교 때부터 오던 꼬마예요. 이제 제 아이를 데리고 왔어요. “
아저씨는 주름진 눈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처럼 대를 이어 찾아오는 손님들이 당신의 가장 큰 훈장이라며 넉넉하게 떡볶이를 덜어주셨다.
얼마 후 아저씨는 세상을 떠나셨고, 지금은 그 자녀분이 대를 이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즘은 로제니 마라니 하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떡볶이들이 넘쳐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허기질 때면 그 시장 골목으로 향한다.
나의 소울푸드는 가장 비싼 재료로 만든 음식이 아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에 담겼던 어린 날의 성취감, 그리고 기우뚱한 걸음으로 다가와 내 성장을 지켜봐 준 아저씨의 따뜻한 환대. 그 귀한 '추억'이라는 양념이 듬뿍 들어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단골집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