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나만 먹는구나
어느덧 세월이 흘러 오십이라는 숫자가 익숙해진 요즘이었다. 세상은 나에게 어른의 무게와 책임을 이야기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해맑은 웃음을 간직한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네, 바로 만화 속 주인공들이었다. 조금 쑥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니 어쩌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이 만화가 좋았고 그 속의 캐릭터들이 좋았다.
유년 시절부터 내 마음을 유독 끌었던 두 친구가 있었다. 바로 '찰리 브라운'과 숲 속의 '곰돌이 푸'였다. 왜 그 많고 많은 영웅들 대신, 나는 늘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이 아이들에게 마음이 갔을까? 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아마도 그 아이들이 가진 어딘가 어설프고 빈틈 많은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서툰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과 위안을 느꼈던 것이었다.
곰돌이 푸는 친구들에게 '머리가 나쁜 곰'으로 불릴 만큼 단순하고 느렸다. 꿀단지를 향한 순수한 열정 외에는 큰 욕심도 없어 보였다. 찰리 브라운은 또 어땠나? 중요한 야구 경기에서는 늘 졌고, 연은 나무에 걸리기 일쑤였으며, 어딘가 모르게 소심하고 걱정이 많아 보였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잘난' 주인공들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 아이들의 서툰 모습 속에 어쩌면 내 어린 날의 초상화가, 혹은 지금도 여전히 서툰 내 모습이 담겨 있었는지도 몰랐다. 완벽하지 못해서 실수하고, 때로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속상해하고, 작은 일에도 소심하게 구는 내 안의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거나 억지로 감추려 들지 않았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솔직하고 꾸밈없이 세상을 마주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더 정이 갔고,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도 매체를 통해, 혹은 길을 걷다 우연히 찰리 브라운의 동그란 얼굴이나 푸의 통통한 실루엣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듯했다.
만화 속 캐릭터라고 흘려 넘기기엔, 그들이 건네는 말들은 때로 삶의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특히 곰돌이 푸가 친구들과 나누는 소박한 대화는 여전히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피글렛, 사랑은 어떻게 쓰는 거야?"
푸의 천진한 물음에 피글렛은 다정하게 속삭였다.
"사랑은 쓰는 게 아니야. 느끼는 거지."
"노력한다고 항상 성공할 순 없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했단 걸 알아둬."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 대화.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오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이네!"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말속에 담긴 따뜻함과 지혜가 나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이 오십에 만화 캐릭터를 보며 웃음 짓는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철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그 아이들이 건네는 순수함과 따뜻함은 내 삶을 여전히 유년시절의 순수했던 나로 있게 했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럽다고 속삭여주는 듯한 그들의 존재가 고마웠다. 오늘도 나는 그 작은 친구들을 떠올리며, 잠시 복잡한 세상을 잊고 미소 지었다. 참 좋은 친구들이었다,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