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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페니 Mar 03. 2024

격조 있게 늙어 갑시다

점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회, 전 그냥 잠수 탈래요.

내가 다니는 여러 모임 중, 신생 모임이 하나 있다. 그저 가볍게 2개월에 한 번 얼굴이나 보고 그냥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의미로 정말 가볍게 모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모임에 나이 든 빌런 하나가 물을 흐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느 날, 그 모임에서 친한 동생이 연락이 와서는 모임의 큰 어르신이랑 (나이 많은 빌런) 그 친구분이랑 함께 식사 한 번 하자더라. 뭐 이상하게 생각 안 했다. 우리들은 종종 시간 맞는 사람들끼리 번개도 하고 만났으니까,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본인이 곧 머리를 올리니 (이 친구가 골프를 이제 막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만든 자리라며 라운딩 가기 전 가볍게 식사나 하자는 거였다.

 뭐, 모임에서 "언제 한번 라운딩 함 하시죠" 라며 인사치레로 던졌던 말이 진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몰랐지만, 놀라운 추진력에 호응해 주기로 하고 식사 자리에 나갔는데, 그게 잘못된 거였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1차 식당에서는 머 이상하진 않았다. 맛집에 모여서 옹기종기 식사하고 이냥 저냥 사는 이야기 하고 평범했다. 그런데 2차 가자며 일어나서 이동하는 중간, 자꾸 나를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함께 부르는 친한 동생에게도 어깨동무를 하고 치근덕 대는 것이었다. 심지어 2차 자리에서는 수위 높은 발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 라운딩 할 때, 라운딩 끝나고 2차 술자리 가는 겁니다 빠지면 안 돼요"


어머 이게 웬일이야. 어디 스폰하는 여자들 데리고 라운딩 나가는 아저씨들이나 할 법 한 추태를 부린다.

 불쾌했다. 모임에서나 "어르신" 하며 호응해 줬지, 나이 들어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싶더라. 심지어 나는 불편해서 자꾸 빼는대도 어깨를 쓰다듬으면 끌어안으니 이거 아니다 싶어 그냥 자리를 파투 내고 싶었다. 내가 다음 일정이 바쁘니, 먼저 모임에서 일어나겠다는 의사를 여러 표출했는데, 되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아니, 난 내가 다니는 회사 회식도  내 맘대로 일어서는데, 이깟 모임이 머 대수라고 내가 이런 불쾌한 기분을 감내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노인네는 집에 내 나이만큼이나 나이가 찬 딸이 둘이나 있다. 근데도 이런 추태를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대표로 있는 곳에서 어린 직원의 사생활을 캐묻고 쫑크를 줬다는 둥,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줘야 하니 그 앉아 있는 시간이 겨우 2시간 정도 남짓이었으나, 내겐 인터스텔라의 시간 같았던 지루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내 휴대폰 케이스가 맘에 든다며, 마구잡이로 가져가 험하게 케이스 벗겨가지곤 자기 거에 그냥 끼워버린다.(내 핸드폰 액정 나갈 뻔했다.)


   "어 잘 맞는데? 이거 내가 해도 될까?"


아니 그럼 내가 안 됩니다. 이럴 수 있나? 머 이런 답. 정. 너 같은 경우를 봤나...

솔직히 기분도 별로인 데다, 옆에서 멋도 모르고 추임새 넣는 후배도 꼴 보기 싫고 해서 그냥 줘 버렸다. 그까짓 거 쿠팡에서 9800원 주고 하나 더 사지머, 이 노친네 보면 또 언제 보겠다며 옛다, 너 가져라  

 

  나이가 한 해 한 해 들면서 나는 말은 아끼고 지갑은 열어야 된다는 걸 배우고 있다. 이 노친네는 그걸 알까? 뭣도 모르는 양반이 나이 들어 은퇴 후 갈 데 없어서 어디 협회에 자리 하나 꿰차고는  심드렁하게 아래 직원들 훈육이나 두는 일이나 하더니, 이젠 모임에 기어 나와서는  볼썽사나운 꼴을 한꺼번에 버라이어티 하게 보여준다 정말 더러운 거 본 기분이다.

  대놓고 지적질을 하기엔 말 들이 많을 거 같고, 그렇다고 알 면서도 당해주기엔 내가 너무 화가 나고 그래서 묘수를 내기로 했다.


      "집에 일이 있어, 당분간 못 나갈 거 같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잠수 타야지

아, 왜 요즘 현대인들이 카톡에서 잠수가 많아지는지 알 거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안 하는 거다..

 할 말 하 안.

 해 봐야 본 전도 못 건질 거라면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지.  나이 든 똥들은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다. 똥이 냄새 풍기고 다들 싫어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 이렸다. 심지어 그 똥은 자아성찰 따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의 수많은  똥들은 본인을 두고 하는 메타포임을 알지 못한다.


 그냥 피하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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