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는 연습

by 지안


내 하루는 오래도록 ‘기다리는 마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2025년, 내게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마음이 느슨해질 틈이 없었다.

어떤 일을 겪은 뒤 그 시간을 그냥 지나갈 수만은 없었다.

아이와 관련된 일을 겪었고, 그 이후로는 여러 절차들을 밟아야 했다.

경찰 조사와 과정들, 진술과 확인,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들 속에서 하루는 늘 ‘다음 단계’로 이어졌다.

수사의 단계가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나는 또 다른 기다림 앞에 서야 했다.

무언가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고, 그 불확실함이 내 하루를 잠식해갔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마음만 달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괜찮아질까.’

‘이제는 끝날까.’

그렇게 기대했다가도 결과가 오지 않는 하루가 쌓일수록 마음은 점점 더 예민해졌다.

나는 평정심을 찾고 싶었다.

최소한 아이 앞에서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고 싶었다.

괜찮은 엄마이고 싶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숨이 막혔고, 어느 날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무너졌다.

‘나 왜 이러지.’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많아졌다.


새해가 되고, 나는 몸이 많이 아팠다.

며칠 감기 정도가 아니라 몸이 바닥까지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그만 버텨.”

“멈추지 않으면 더 크게 무너질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알게 됐다.

내가 ‘건강’을 잃은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너무 오래 긴장한 끝에 느슨해져 버린 상태였다는 걸.

힘을 주고 있던 손을, 끝까지 쥐고 있던 마음을, 더는 붙잡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격증을 네 개나 땄고, 사람들은 나를 보며 “너는 하루를 48시간을 사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안다.

나는 늘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놓치고 싶지 않았고, 더 지키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나로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시간은 늘 부족했고, 하루는 언제나 빠듯하게 흘러갔다.

나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일상을 지키려 애썼다.

아이가 무너지지 않게, 적어도 집 안에서만큼은 최대한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다.

매일 집밥을 챙기고 작은 루틴을 유지하는 일이 나에게는 '괜찮다'는 증거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평범함이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손잡이었다.


늘 무언가를 챙기고, 늘 무언가를 해결하고, 늘 다음을 준비해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게 살면 불안이 덜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작년을 지나오고 새해를 맞고 그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끌어안으며 나는 아주 늦게,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먼저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챙기는 일이 가장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올해는 뭐든 다 챙겨야 하고 뭐든 다 직접 해결해야만 했던 나에게 이제는 다른 말을 해주고 싶다.

“너도 좀 챙겨.”

“너도 좀 쉬어.”

“너를 더 생각해도 돼.”

나는 아직 그 방법을 잘 모른다.

늘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니까.

하지만 올해는 연습해보려고 한다.

앞만 보고 매일 긴장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연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연습.

그리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조금씩 느슨해지는 과정을 나에게 허락하는 연습.


이 글들은 단순히 “쉬고 싶다”는 마음에서 끝나지 않을 거다.

올해의 나는, 몸과 마음이 느슨해진 나를 다시 세워보려 한다.

작은 루틴을 만들고, 운동을 시작하고, 하루를 조금 덜 채우는 연습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뎌보면서 내가 어떤 노력들을 통해 조금씩 ‘진짜 여유’를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해보려 한다.

그리고 올해는 내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글도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이야기만 붙잡고 달리는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한 권의 책을 펼치고, 어떤 문장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보고 싶다.

그게 내게는 요즘 가장 간절한 바람이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회복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혹시 어떤 일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나는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지나갈 것이다.


이 글이 앞만 볼 수밖에 없었던 나를 위한 첫 기록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작은 쉼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