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의 인정
언제부턴가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아니, 내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결국은… 그런 것 같다.
예전의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 마음의 방향을 더 믿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혼자 등교시키고, 도서관에 들러 책 한 권을 읽고, 혼자 예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았다.
물론 그때도 내 인생에 행운만 찾아온 건 아니었다.
희노애락은 늘 있었지만, 그마저도 긍정으로 바꿀 힘이 내게 있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다시 나를 끌어올리는 힘이 있었다.
매일 내일이 조금씩 기대됐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보여줄 나를 위해
내일은 어떤 스타일을 입을지, 어떤 기분으로 하루를 열지 생각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흥미로워했고,
그건 꾸며낸 모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였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사실 나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편이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자격증을 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쌓아왔다.
다만 그때의 달리기는 ‘더 잘 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이의 일이 생기고 난 뒤부터
내 삶의 리듬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동학대 사건 이후, 나는 쫓기듯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매일 확인하고, 대응하고,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단단해진 사람’이 아니라
‘굳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았고, 숨을 고르면 뒤처질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어떤 얼굴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지 보게 됐다.
그제야 나는 나를 다시 봤다.
그리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원래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이 정도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것만 해도 괜찮은 사람이다.
그 인정이 시작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인정은
타인에게서 받는 인정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칭찬이나 평가로 채워지는 인정도 아니었다.
내가 말하는 인정은
나 스스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나에게 필요한 시작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 마음이 조금 비워졌다.
비워진 마음은 깨끗해졌고
나는 오랜만에 평온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욕심이 있었다.
나는 더 잘할 수 있고, 더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마음이 나를 앞으로 밀어준 순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해내고 싶은 마음’은
나를 살리는 힘이 아니라 나를 몰아붙이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내가 욕심을 부릴수록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려 애썼고,
그럴수록 오히려 나는 더 지쳐갔다.
계획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세우는 게 좋았다.
무리하면 늘 탈이 났다.
내 몸도,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균형이라면
열심히에도 조절이 필요했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 힘을 쓰기 위해
평소엔 힘을 아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어쩌면 더 오래 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하루하루를 너무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니 지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혼자 마음이 급했고,
급한 마음으로 또 하루를 다 해냈다.
어느 정도는 해냈다.
분명히 나는 살아냈다.
그런데 그 이상은 아니었다.
나아간 날도 있었고, 제자리인 날도 있었다.
그 삶이 부질없진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는 그 방식이 ‘나를 위한 삶’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나에 대해 알아보는 것.
나에 대해 인정하는 것.
모자라도 되고, 넘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걸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
내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첫 번째 시작이 아닐까.
오늘은 아이와 같이 운동을 했다.
서로의 표정을 따라 하며 웃었다.
그 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내가 앞으로 찾고 싶은 삶은
이런 작은 평온이 쌓이는 삶이다.
돌고 돌아 내가 배운 건 하나였다.
나를 더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고유의 나를 인정하는 것.
그게 내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