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내려놓는 연습
나는 이 정도만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했다면
오늘 하루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MBTI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계획형이라는 J 유형이다.
이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이어리를 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10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가계부 역시 몇 년 전까지는 빠짐없이 적었다.
다이어리에는 매일 할 일을 미리 적어두고 그 줄을 하나하나 다 그어야 비로소 하루가 끝나는 사람이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말이 되지 않았고, 내일 할 일을 오늘 해버리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머리는 늘 바쁘게 돌아갔다.
그 피곤함은 어느새 몸에까지 배어 있었다.
나에게 ‘깜빡함’은 사치였고 계획한 일은 반드시 해내야 했다.
시간이 되면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했다.
그나마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이라면 자정을 넘겨 잠드는 것, 혹은 너무 이른 시간에 잠들지 않는 것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용실에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보게 됐다.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멈췄다.
나는 인생에서 ‘열심히’를 빼고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간 열심히 살지 않다가 다시 평범한 직장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 선택이 열심히 살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고뇌가 잠깐, 나를 비추는 것 같았다.
그 간접 경험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하루에 다이어리에 적힌 일을 다 하지 않으면
찝찝했고, 하루가 끝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 줄이 모두 그어져야 그날은 ‘완벽한 하루’였던 것 같다.
거창한 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마무리되어야 나에게는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하나고, 모든 걸 다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몸의 한계에서도 느꼈고 주변에서도 말해준다.
천천히 해도 된다고, 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성향에는 분명 장점도 있다.
그 덕에 주변 사람들이 편할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나를 위한 장점은 아니었다.
모든 일을 미리 하지 않아도 된다.
기한이 다가와서 해도 괜찮은 일도 있다.
나는 그걸 오래도록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잠시 멈춰 생각해 본다.
오늘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만 해도 성공이라고 나에게 말해준다.
기대치를 낮추는 연습을 한다.
나를 더 혹사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오늘 해야 할 일만 해도 나는 충분히 잘 해냈다고.
내가 나를 안아주기로 했다.
계획적이고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미뤄도 되는 일은 하나둘씩 미뤄보려 한다.
그 중심에는 내 몸이 편하고, 내 마음이 편한 선까지만.
세상에 내가 한 가지를 덜 한다고 해서 그날 무슨 큰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말처럼 그건 생각보다 넓은 범위에서 사실이다.
게으르게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의 몸과 마음이 버틸 수 있는 만큼만, 급한 것부터 해내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되뇌인다.
오늘 하루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