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때로, 멈춰 서게 한다

멈춘 시간 속에서 알게 된 일상

by 지안


올 초, 나는 나를 위한 쉼을 연습해 보겠다고 마음먹으며 이 글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떤 일들은 준비 없이 삶의 속도를 바꿔 놓는다.


그 다짐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분주했다.

출간이라는 목표로 투고를 했고,

또 다른 주제로 전자책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올해도 역시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적당히 쉬어가야 하고,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 겨울의 끝자락,

우리 가족의 일상은 예기치 않게 잠시 멈췄다.


새벽에 울린 한 통의 전화로 나는 아이를 깨워 급히 집을 나서야 했고,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평소 당연하게 이어지던 하루의 리듬은 사라졌고,

방학 동안 아이와 계획했던 일상도

자연스럽게 모두 멈추게 되었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눈을 뜨면 다시 나서는 하루들이 반복되었다.

아이의 일정도, 내 하루도 더 이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함께 있었다.


각자 바쁘다는 이유로 한 공간에 오래 머물지 못했던 시간들이 그때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서로를 걱정했고, 가족들과 더 자주 연락했고, 안부를 묻는 얼굴을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잘 되지 않던 ‘쉬어가기’는 그 시기, 강제로 찾아왔다.


일상이 멈췄다.


다행히 그 멈춤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조금씩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와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의 소중함을 배웠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감자탕을 끓이고, 치즈돈가스를 만들고, 식혜까지 손수 만들어 주었다.


병원을 오가던 시간 동안 사실 나는 체력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걱정이 쌓여 어느 날은 그냥 울어버리기도 했다.


그걸 알고 난 뒤부터였을까.

남편은 더 부지런히 가족을 챙겼고, 나는 그 모습이 고맙고 또 미안해 자꾸만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복잡한 마음 끝에는

감사함이 남았다.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 식사 한 끼, 집 안에 퍼지는 냄새, 각자의 자리에서 오가는 말들.


그 모든 것이 그전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번 시간은 우리에게 분명 위기였지만, 그저 위기이기만 한 순간은 아니었다.


잠시 멈춰도, 아주 대단한 무엇이 없어도,

이렇게 그대로의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나는 지금, 멈춰 서 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다시는 없을 아픔으로

위기를 맞이한 분들에게,

그 시간이 언젠가는

위기만은 아니었음을,

삶을 지탱하는 발판이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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