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15회기 상담

15회기를 끝으로 우리가 얻은 것들

by 지안

사실 이 일을 겪음으로써 아이는 놀이치료를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인 나의 상담은 고려해 볼 사안이라고 생각했으나, 주변에서 보는 시선은 달랐다. 아이도 아이지만 부모인 내가 상담이 더 급해 보인다고들 했다.

이 사건이 수사기관에서는 진행 중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 가정이 받은 고통도 이미 진행 중인 데다 이 작은 동네에 말도 안 되는 구설수로도 꽤나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친모인 나와 우리 아이는 학교 시간을 조정하고서 주 1회 동네와는 30분 거리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의 치료와 상담을 한 주도 빠짐없이 다녔다. 거기서 보내는 1시간을 위해 매주 왕복 1시간을 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제 자리로 돌릴 수만 있다면 주 1회가 아닌 시간을 더 늘려서라도 더 자주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가 표면적으로 표출하는 부분 이외에도 마음 안을 들여다보고 만져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학교 스케줄도 필사적으로 시간조정을 했고 간혹 여행 가는 주에는 시간을 대체해 15회기를 다 채웠다.


관할 구청에서 아동학대사례로 판단을 이미 했고, 담당 주무관님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우리 사건을 연계하여 상담과 치료를 받게 전달해 주었다.

이 상담은 구청 아동학대과에서 '아동학대'사례로 인정을 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직접 가정으로 와서 상담을 하는 담당자분과는 이미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고 2월경부터는 아이와 내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직접 찾아 아이는 놀이치료를 친모인 나는 상담선생님과 만나 상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주 1회 1시간 동안 진행되며 기본으로 제공되는 회기는 15회기로 그 15회기가 끝날 때쯤 추가 연장이 필요하면 부모와 선생님이 면담을 통해 추가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 시간들이 전혀 귀찮게 느껴지지 않고, 나중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매주 아동보호전문기관을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아이의 자그마한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라면 거리나 그로 인한 소요시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회기를 채워가는 시간 동안 친모인 내가 선생님을 만나는 그 시간을 오히려 더 기다렸고, 심지어는 설레어하고 있었다. 나와 매주 1시간을 나누는 선생님과의 만남과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즐겁지 않은 일로 만났지만 즐겁다는 표현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렇게 후련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잘 없다. 처음엔 사실 쉽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적나라하게 내 속을 꺼내 털어놓는다는 게.

내가 살면서 잘해본 적이 없는 행위이다. 누군가의 대화 속 듣는 쪽을 선택해 살아가던 나에게 그 어려운걸 선생님은 다독여주었고 나에게 그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어느새 날씨얘기로 시작해 선생님에게 참았던 그 한주의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준 1시간이 지나곤 늘 후련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처음에는 선생님에게 상담 중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이게 선생님에게 일이라면 일이지만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선생님에게 미안했다. 이건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대체적으로 분노였기 때문이다. 1시간 내내 분노의 감정만 쏟아 낸 시간들이 잦았음에도 선생님은 같은 이야기를 또 들었고 또 들어줬다.

그리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되고 어머님도 아이에게 그것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것이냐는 말도 함께.

이 사건을 만든 가해선생님은 물론이고 원장님에 대한 그에 못지않은 분노, 또 2차 피해를 준 동네 엄마들에 대한 그에 못지않은 분노로 1시간이 매주 모자랐던 것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초반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것들과 혼자 싸우고 있는 중인 것 같다고 했지만 회기가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스토리를 함께 바라보며 상황파악을 같이 했고, 그 정체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선생은 주목했고 그다음엔 원장을 주목했고 그다음에는 원장을 둘러싼 엄마들을 주목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번뜩거렸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덧 큰 남김없이 감정을 쏟아냈고 그러면서 나는 점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며 이게 뭔지도 모르고 깜깜한 공간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점점 빛을 보기 시작했다. 변한 상황은 없지만 그 실체를 조금씩 알게 되고 나서는 웃음이 돌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이게 뭔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선생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선생님. 제가 일단은요.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어서요. 이 이야기를 다 쓰고 싶고요. 그다음에는 출판사에 투고할 거예요. 그래서요. 이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선생님은 이 다짐을 다행히 너무나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었다. 글을 쓰고 당연하게 그걸 내가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내 치유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었다. 선생님 덕분이라고. 선생님 덕에 제가 나아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되는 날이 온 거라고.


그새 아이도 놀이치료선생님과 꽤 많이 친해져 있었고, 조금씩 자신감을 다시 찾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너무나 흔하게 존재하듯 다행히 엄마인 나는 이 사건이 종료되지 않았음에도 점차 불행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도 그토록 원하던 예전의 마냥 밝던 망설이지 않는 모습이 순간순간 비쳤다.


그러던 사이 우리의 상담회기가 끝을 보였고, 왕복 1시간 정도야 전혀 문제가 안되었던 나에게는 이 시간이 끝나는 게 아쉽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놀이치료선생님에게 회기연장을 요청했고 고려해 본다는 대답은 들었지만 사실 이미 상담종료로 내부적으론 결론을 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오는 아이들 중 대다수가 가정에서 아동학대를 받아 오게 된 부모와 아이들이 많고 그에 비해 나는 아주 소수인 경우인 기관에서 선생님에게 아동학대를 받은 경우였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주기로 집에 오는 담당자분도 우리 가정에 대한 일지를 쓰는데 우리 아이는 가정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고 가정에서의 환경도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썼고, 놀이치료선생님도 모든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며 처음에 비해 우리가 목표한 목표를 다 도달했다며 최종 연장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해주었다.

내 아이를 15회기 동안 지켜봐 준 놀이치료선생님에게 돈을 주고 더 놀이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받을 정도라고 했지만 우리 가정보다 더 급한 아이들도 있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우리 가정은 여기서 상담을 종료해야 했다.

아이의 선생님, 나의 선생님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에 진심을 담아 마지막날 장문의 편지를 전달했고 우리 아이도 꼬깃꼬깃한 색종이에 편지를 써 선생님에게 전했다.


'이로운 일을 하고 계신 선생님, 저는 많이 아팠지만 많이 해소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편견 없이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치유인지를요.

끓어오르는 끊임없는 분노를 선생님 덕에 잘 정리해 나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나아갈 수 있었어요.

잘~지내기를 바랄게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꽉 채운 15회기의 상담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나아가 내가 새로운 결심을 하는 날까지 오게 되었다.

이렇게 이 일로 입은 피해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라 진실과 상반된 이야기를 믿고 우리 가정을 모욕했었던 자의 입을 빌리자면

'우리 아이가 너무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멀쩡해 보이길래'라고 말을 했다.

피해자인 우리 아이와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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