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행복은 자랐다.

상처가 남긴 것은 고통이 아니라 시선의 깊이었다.

by 지안

사람들은 흔히 ‘아동학대 피해’라는 말을 들으면 피해 가족은 늘 고통 속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단순히 고통이 아닌 내가 없는 것 같은 해탈의 지경에까지도 갔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가족의 시간은 조금 달랐다.

물론 처음엔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어떤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 지역사회에 한 아파트에 내가 있는 것도 싫었고 집 앞 놀이터며 주변 환경 모든 것들이 다 싫어졌었다. 내가 그리 좋아하는 자연과 가까이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그것도 전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어디든 좋으니, 제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하루를 꼬박 울기만 한 적도 있었다. 다시는 죄책 감 없이 웃을 수 없을 것 같던 날들이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삶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자연스럽게, 천천히. 고통을 충분히 다 느끼면서.

그래서 그 와중에도 나와 아이, 가족이 함께 웃은 날들이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캠핑에서의 공기, 집밥을 주로 먹는 우리 집 주방의 음식 냄새, 아이의 웃음소리…

그게 우리를 다시 살게 했다.

사소하지만 당연한 것들이 우리가 고통 속에서도 찾아낸 작은 평화들이다.

우리는 안 힘들지가 않을 수 없는 시기 속에 국내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주말이고 평일이고 당일여행, 1박 2일이나 2박 3일도 학교에 미리 가족여행으로 교외체험신청서를 작성해 떠났다. 그리고 여행 가서 또 다른 지친 순간이 마주쳐도 그 순간은 이 상황을 잠시 잊게 했고, 잠시 웃게 했다.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아이는 그래서 체험학습날짜가 14일 중 4일이 남은 상태이다. 초등학교에서의 학습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과의 시간과 그 속에 행복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 말도 안 되는 시간 속에 그나마 마음을 덜 다칠 수 있고 나 자신으로 버틸 수 있었던 건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이번 기회로 무수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힘내요” 한마디 건네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도 내 옆에 다가왔다.

그들의 진심은 세상의 시선보다 훨씬 따뜻했다. 그들에게 고마움은 잊지 않고, 나의 아픔을 토대로 내가 겪은 쓰러졌다가 일어나서 내 할 일을 이어나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리고 언제든 나도 당신에게 그런 존재가 되리라는 것도 다짐했다.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완벽하거나 문제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상처를 겪기 전 단촐하고 평화로워서 단순하게 보이던 세상이 알고 보니 아주 복합적이고 치열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보았다. 고통이 남는 과정이 아닌, 그 고통이 나의 시선을 더 깊게 만들어준 준 것도.

상처는 결국 나의 세계를 넓혀주고 있다.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작은 평화의 소중함과 타인의 감사함을 진심으로 보고 느끼며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가지게 해 줘서 나의 현재 상황과 이질적이게 세상에 감사를 전했다.


<유퀴즈를 보다가 마음이 아린 장면을 첨부합니다.>



"너 시궁창에 빠져본 일 있냐? 난 있다.

물이 생각보다 뜨뜻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