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 비켜간 고조 속에서 깨달은 것들
아이의 학대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절차를 믿었다.
사과는 개인의 문제이고 제도는 구조의 문제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그 구조가 우리 아이를 보호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될수록 그 믿음은 조용히, 꾸준히 무너졌다.
작년, 우리는 CCTV 영상을 확인한 뒤 같은 반 부모님들에게만 사실을 전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알겠다”는 말은 있었지만 시간만 흘렀고, 끝내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어린이집의 침묵과 일부 부모들의 가벼운 판단 사이에서 진실은 말해지지 못했고, 오해와 소문이 앞질렀다. 어느 날 아이는 학대를 당했고, 또 어느 날 나는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 서 있었다. 마음은 매일 샌드백처럼 두들겨졌다.
시간이 지나 구청과 경찰의 조사 결과가 조금씩 드러났지만, 어린이집 원장은 어떤 사실도 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곡된 이야기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 삶의 기준으로 삼아온 ‘정직함’과 멀어진 모습으로 내가 타인의 입에서 소비되는 경험은 견디기 어려웠다. 거짓이 진실처럼 굳어졌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아무도 나서서 이 일을 수습하지 않았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내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낸 것이 나의 죄였던가?”
떠안지 않아도 될 죄책감은 오래도록 나를 짓눌렀다.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 무렵 친분이 깊던 지인에게 억울한 시간을 털어놓았고, 그 이야기는 그와 크게 가까워 보이지 않던 그의 지인에게까지 전해졌다. 그 과정에서 이전 교육기관에서도 내가 교사를 무릎 꿇렸다더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참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이 떠올랐다. 왜 참아야 하지? 아닌데, 왜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지?
보이지 않는 다수의 무게에 반발심이 치밀었다. 소문을 물었다던 그 사람에게 직접 연락해 출처를 물었지만, 그는 횡설수설하다가 나를 차단했다. 이 황당한 일을 지인에게 전했을 때 돌아온 말은 “왜 그런 걸 물어봐 곤란하게 하느냐”였다. 결국 그 지인과도 거리를 두게 됐다. 나는 ‘어디서 들었냐’는 가장 단순한 질문조차 허락되지 않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런 시간은 하루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불안만 남겼다.
그사이, 피해 가정의 2차 가해를 막아야 할 원장과 교사는 회피로 일관했다. 학부모들이 물을 때마다 “아직 수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되었고, 결과가 나오고 있음에도 어떤 안내도 없었다. 분노조차 표현하기 어려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재판을 앞두고도 교사와 원장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교사는 고소 후 두 달 가까이 근무를 이어가다 CCTV 판독이 끝나자 근무를 그만두었고, 원장은 1년 가까이 더 근무하다 지난여름 퇴사했다.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질 거라 믿었지만, 침묵은 더 단단했고 그 뒤의 구조는 더 견고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자리를 떠나 따져 물을 수도, 마주할 수도 없다.
상급기관의 태도는 더 미온적이었다.
원장의 손을 떠난 일이라면 구청이 최소한의 공지라도 하리라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은 “원장에게 사과를 권유해 보겠다”였다. 결과가 나와도 안내는 없었고, 피해자가 아닌 기관의 조용함이 우선됐다. 부모들에게 공식 입장을 공문으로 안내해 달라는 요청에도 계획은 없어 보였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이렇다. 구청의 권유에도 원장은 “사과하지 않겠다”라고 했고, 결국 퇴사를 택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근거 없는 말을 퍼뜨리며 2차 가해를 주도한 사람이 해당 보육기관 운영위원회에 속한 학부모였다는 점이다.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가장 앞에서 피해 가정을 흔든 셈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거짓을 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고, 나는 가능한 증거를 모아 그 학부모를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 사실을 구청에도 알렸지만, 돌아온 답은 “학기 중 운영위원 교체는 어렵다”는 행정적 곤란뿐이었다. 피해자인 우리 가족은 계속 공격을 받는데,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직함을 유지했다. 그 부조리 앞에서 나는 여러 번 같은 생각을 했다. 피해자인 우리는 계속 당하는구나.
구청은 내가 글을 올려 오해를 해명하는 일조차 만류했다.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만 반복됐다. 하지만 나는 이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야 한다. 조용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제는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지 않았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침묵의 요구처럼 들렸다. 그 순간 명확해졌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줄 의지가 없다는 것. 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피해자는 고립되었다.
나는 어느 날엔 관할 구청이 아닌 교육청을 직접 찾아가, 사건이 검찰 송치까지 된 상황임을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보육기관과 교육청은 아직 통합되지 않았다”였다.
행정의 틈 사이, 나는 보호받지 못한 채 남았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거듭했다.
“이 구조에서 내 아이를 지켜줄 곳은 어디인가?”
이 과정을 지나며 가장 뼈아프게 배운 한 가지.
내 아이를 지킬 사람은 결국 나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 깨달음은 무겁고 외로웠지만 동시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누군가 대신해주지 않을 싸움이라면, 나는 끝까지 기록하고 묻고 요구할 것이다.
아직도 사과받지 못했지만, 침묵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비정상이 정상에게 이기지 못하는 날이 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