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2’가 나오면 좋겠다.

80년대 후반 출생자들이 40대가 된 기념으로!

by 책하마

2012년도, ‘응답하라 1997’드라마가 등장했을 때 드라마의 신선함과 각종 감성을 자극하는 멘트, 그리고 당대의 핫한 아이돌 멤버들이 열연을 펼치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97년도에 학창시절을 보낸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언니오빠들은 그 시절 향수에 젖어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난다.

나도 물론 드라마가 재미있었다. 드라마 내내 풍기는 특유의 따뜻하고 구수(?)한 분위기가 좋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정은지 배우님의 열연도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90년대의 인기가요, 아이돌그룹, 유행아이템들은 물론 나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내가 너무 어릴 때 등장했던 것들이었다. 대략 초등학교 저학년 때 쯤. 대중문화를 향유하기에는 ‘국민’학교(3학년 때 갑자기 초등학교라고 명칭이 바뀌었다,) 음악시간에 배우는 동요들이 더 친숙하던 꼬꼬마였다.

응답하라 1997이 흥했으니 그 이후 시대의 것도 나오지 않을까, 많이 기대했는데 어째 후속 드라마들은 응답하라고 하는 연도가 점점 앞으로 갔다. 94년도, 게다가 88년대까지 가 버리니 드라마의 재미와는 무관하게 마음 한 켠으로는 약간 아쉬웠다.

초등학생보다는 중고등학생들이 대중문화에 흠뻑 젖어들곤 하는데(요즈음엔 초등학생들도 아이브 콘서트에 간다고 하니..달라졌을까?) 나 같이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다.

10대들의 우상을 표방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HOT, 현재 걸그룹의 형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SES가 데뷔했을 때 우리는 너무 어린이였다. 물론 우리도 인기가요와 음악캠프를 보며 하트가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콘서트 티켓을 사기에는 너무 어렸다.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의 대결구도를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향유한 것은 우리의 언니오빠(대부분 언니들)들이었다. 그들이 교복을 입고 같은 색 풍선을 들고 현장에서 응원하는 장면을 동경하며 지켜봤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을 할 때 쯤 이제 Y2K로 말미암아 모든 컴퓨터 전산 시스템이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 하는 공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었고, 초등학교 졸업식을 할 땐 우리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하며 머쓱해하곤 했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자, 우리 초등학교 때 데뷔했지만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던 신화와 god가 슬슬 거대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교복을 입고 용돈을 모아 신화의 앨범을 사고, 팬클럽에 가입했다. 문제집을 구입할 명목으로 받은 돈을 조금씩 빼돌려 오빠들의 브로마이드를 사고 방 한가득 덕지덕지 붙여 놓아 60년대생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유발하기도 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천리안,유니텔에 접속해 같은 동네에 사는 신화 팬 친구들을 찾느라 전화선을 불통으로 만들었고,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던 50년대생 아빠의 불호령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2002년 월드컵이 열렸다.

신화창조 신화산만 외쳤던 나는 이제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민우 김동완 오빠의 부인을 자처했던 나는 잠시 박지성 오빠의 부인을 자처하기도 했다(박지성 오빠랑 결혼하지는 못했지만 같은 해에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ㅋㅋㅋㅋㅋ). 월크컵 생중계 현장 티켓은 구하지 못했지만 비더레즈 티셔츠를 입고 태극무늬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빨간 두건을 쓰고 축구공 모양의 귀걸이를 한 나와 내 친구들은 동네 근처 대학교, 축구경기장 전광판 광장으로 달려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어 안정환 오빠가, 박지성 오빠가 골을 넣을 때도,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이운재 아저씨가 한 골을 막고 홍명보 아저씨가 막골을 넣을 때도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해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엔 남동생이 자폐성장애 특유의 텐트럼을 길 한복판에서 보여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남동생 뿐 아니라 모두가 거리에서 괴성을 지르고 막춤을 추고 심지어 자동차들까지 대~한민국 박자에 맞춰 경적을 울리면 그 경적에 답하는 짝짝짝짝짝 경적까지 뒷차가 울려 주었으니까.

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낙으로 사냐던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의 단독 토론주제는 ‘이라크 파병, 과연 옳은 선택인가’였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축제 무대에는 예쁘고 인싸인 여학생들(그 시절엔 인싸라는 단어는 없었지만..)이 보아의 아틀란티스소녀, 이효리의 텐미닛을 틀고 춤을 추었다. 그러다 동방신기가 데뷔하자 남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들을 향해 ‘Hug’를 큰 소리로 부르며 공개 고백공격을 해댔다. 고백이 성사된 커플은 싸이월드 사진첩에 하트 폴더를 만들어 커플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고백공격이 싫었던 여학생들은 이마 중간쯤까지 자른 일자 앞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진절머리를 쳤다. 곁에서 공감하던 그녀의 친구들은 대부분 아동복처럼 작게 만든 교복 조끼에 대비되는 펑퍼짐한 공주치마를 입고 있었다. 고백공격 실패를 조롱하며 킬킬거리던 남학생들은 매일 아침마다 발을 ‘포인’한 상태로 간신히 입어야 하는 쫄바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여학생 남학생들 모두 공들여서 샤기컷 머리를 수시로 다듬기 위해 공주치마 주머니에, 쫄바지 주머니에 얇은 꼬리빗을 지참하고 다녔다.

최초로 수능샤프를 사각거리며 수능을 봤던 우리가 어른이 될 무렵 무한도전이 방영하기 시작했다. 퍼가요 물결하트를 남발하며 각종 오글거리는 게시물들을 자기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가져와 열심히 꾸미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직전 대학교를 졸업한 우리들은, 각 과의 과대표가 늘 단체문자로 학과 공지를 했기 때문에 학과에서는 과대표에게 문자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던 것 같다. 여학생들은 과제 발표, 과 모임, 미팅이나 소개팅 때 한껏 힘을 주며 꾸몄는데, 이럴 때마다 파스텔 톤의 하늘하늘한 원피스에는 꽃무니와 레이스가 알알히 박혀 있었다. 뾰족한 가보시, 웨지힐 구두 그리고 핸드크림도 안 들어갈 것 같은 체인 달린 핑크색 미니백까지 장착하면 그날의 샤방샤방 패션리더였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어야 하는데 자기 팔뚝이 굵어 걱정이라는 친구들은 역시 레이스가 달린 볼레로를 입어주었다. 다소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친구들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레깅스와 함께 입곤 했다. 그렇게 한껏 꾸민 우리들은 모임과 중요한 자리가 끝난 게 아쉬워서, 함께 모여 캔모아를 가 생크림 듬뿍바른 식빵을 먹거나 준코에 가서 과일소주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청춘을 보내던 우리는 이제 40대가 됐다. 이제 응답하라 시리즈가 마지막으로 나온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 응답하라 2002가 만들어진다면, 그래서 2000년부터 2010년대까지 학창시절과 청춘을 보냈던 나는 무조건 본방사수하여 열심히 시청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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