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어 보이는 친구 말고, 편안한 친구와 어울릴 걸

멋있어 보이는 친구 말고, 편안한 친구와 어울릴 걸

by 책하마

막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중학교 교실. 쉬는 시간에 여학생 6명이 신나게 떠들며 웃는다. 폴짝폴짝 뛰며, 꺄르르꺄르르 웃으며, 돌고래 울음소리같은 소리들로 왁자지껄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6명 중 5명만 진짜로 신이 나 있고 한 명은 왠지 억지웃음인 것 같다. 억지웃음을 짓는 학생은 기가 제대로 빨렸는데 쉬는 시간 10분 만에 볼이 헬쓱해진 느낌이다.

점심시간. 밥을 다 먹은 녀석들은 아까 쉬는시간보다 더 신이 났다. 이제 노래도 부르고 춤까지 춘다. 여학생 여섯 명은 모여서 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반 분위기를 함께 주도하는 남학생 무리들까지 함께 신나게 떠들고 논다. 하지만 이 중 한 명은 여전히 약간 이질적이다. 진심으로 이 상황이 신나는 다른 녀석들에 비해 뭔가.. 다른 조용한 곳으로 피신하고 싶은 눈치다. 하지만 그러진 않는다. 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친해 보이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무리를 떠나지 못하고 함께 있다.

그렇다고 같은 무리 친구들이 한 명을 따돌리는 건 전혀 아니다. 어딜 가도 여섯이 함께 가고, 괴롭히거나 놀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섯 명은 서로 엄청나게 갈구고 격하게 노는 반면 이 한 명에게는 갈구지도 않고 상냥하게 대한다. 오히려 조심히 대한다. 하지만 한 명은 느낀다. 아.. 내가 가장 대하기 조심스럽구나. 소위 '찐친'처첨 막 대하진 못하는구나.

한 명은 조용하고 섬세한 감정을 지녔다. 그래서 어떤 친구든 배려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 그래서 같은 무리 다섯 명 이외에도 짝꿍 친구랑도, 뒷자리 친구랑도 친하다. 오히려 이 한 명은 자기랑 비슷한 조용한 성격의 짝궁 친구, 뒷자리 친구랑 대화할 때 마음이 한결 편하다.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다니진 않는다. 아까 그 불편하고 활발한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왜냐, 그 무리는...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 있고 주도적인 무리기이 때문이다. 그 무리에 있으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 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착각이 들고 우쭐해지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은 그 무리 친구들은 잘 놀고, 잘 꾸미고, 목소리도 커서 참 멋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근데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 내 성격대로만 지내다가는 점점 찐따가 될 것만 같다. 나름 노력하는 것이다. 인기 많은 학생이 되기 위해서.


그렇다. 그 한 명은 중학교 때 나였다. 왜 그랬는지 그때의 난 성향에도 맞지 않은 인싸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 뿐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잘 놀고 활발하고 잘 꾸며서 인기가 많은 친구들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 편하지 않았다. 진짜 친해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같은 무리에 있는 듯 하면서도 그들은 나를 다정하지만 조심스럽게 대했다. 결국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은 무리의 친구들과는 멀어졌다. 대신 무리 밖에서 사귄, 성향이 잘 맞는 조용한 친구들과는 반이 달라져도 계속 친하게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도 연락하는 옛 친구들은 전부 무리 안의 친구들이 아니라 진심을 나누며 편하게 지냈던 친구들이다. 굳이 안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쓰지 않았어도 될 에너지를 쓰고, 혼자 초라해지고 뻘쭘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시간에 그냥 나처럼 조용하고 섬세한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걸. 그때는 인기가 많은 게 최고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학생 때는 당시의 인간관계가 영원할 것 같지만 모두 '시절 인연'에 불과했다. 교실에서 인기있던 아이들이 더 신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존재감 없던 친구들이 나중에야 인싸가 되기도 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던 친구들이 동창들과 연락이 소홀해지며 잠적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나랑 잘 맞는 친구들과만 우정을 유지하고, 또 그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었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니 다른 인간관계보다 가족관계가 훨씬 중요해졌다.


지금 어린 학생들의 관계 고민을 들어보면 나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멀어지거나 무리에서 융화되지 못하면 하늘이 무너진 듯 고민하는 모습. 원래 그 시기에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니, 나 같은 아줌마가 아무리 "아무 일도 아냐.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해결돼"라고 한들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 그래도 어딘가에는 자신과 잘 맞는 친구가 있으니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란.. 함께 있으면 내가 멋져보이고 우쭐해지는 친구가 아니라,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대화가 잘 되는 친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