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하게 수학공부를 할 걸
2005년 11월 23일, 오후 12시가 다 될 무렵.
2006학년도 대수능 수리영역 시험이 끝나가던 때였다.
수학 30문제 중에서 종잡을 수 없는 문제가 10문제정도 되는 것 같아 머리가 온통 하얘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손이 차가워지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기를 쓰고 수학점수를 올리려고 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어릴 때부터 수학공부가 참 어려웠다. 초등학생 시절 스티븐존슨 증후군을 앓으며 학습에는 손을 놓다시피 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몸 건강을 회복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다른 과목들은 특유의 성실성으로 열심히 따라잡았으나 수학만큼은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초등수학의 기초가 없었으니 중학교 수학시간에 수업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고,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한 상태로 시험이라도 잘 보기 위해 문제집에 나온 문제들의 풀이과정을 달달 외웠다. 그렇게 해서 기본 유형 문제들은 대충 풀 수 있게 돼서 시험이 어려우면 70점대, 쉬우면 80점대의 점수를 받곤 했다.
수학을 잘 하고 싶어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했어도 개념설명은 제대로 듣지 않고 어려운 문제의 풀이과정만 주의 깊게 들었다. 그땐 내가 개념을 몰라 수학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쉬운 문제는 맞고 어려운 문제는 틀리니 어려운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 될거라 생각했다. 학원에서는 어려운 문제도 유형화하여 계속 제공했고, 개념보다 문제풀이 과정을 외웠던 나는 학원에서 반복해 내 준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내 수학실력이 늘었다고 착각을 했다. 하지만 시험 때 전혀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손도 대지 못했고, 수학 점수는 시험 난이도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탔다. 수능 수학문제는 이제까지 문제집에서 보지 못한 신 유형의 문제가 주로 나왔고, 최악의 수학점수가 나왔다(나중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시중 수학문제집은 기출문제들 위주로 만들고, 수능시험은 기출문제와 다른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출제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하루에 4-5시간씩 수학문제만 풀었던 나는 안타깝게도 수학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나름 열심히 했는데도 수학머리가 없어서 수학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범대학에 진학해 전공과목인 교육학을 듣고서야, 나의 수학 공부법이 완전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과 내용은 나선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전 학년에서 배운 개념이 다음 학년에서 또 나오되 더 많은 내용을, 더 심화된 개념을 다루게 되는 것이다. 마치 토네이도의 회오리 모양처럼. 밑부분은 좁고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것처럼. 모든 과목이 그렇지만 특히 수학은 이 위계가 정말 체계적이다. 그래서 전 학년의 개념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학년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이해가 어려웠던 것이다.
수학공부는 튼튼한 자재로 바닥부터 탄탄히 다지고 쌓아올려야 하는 성이었다. 높이 올리고 싶다고 해서 쟁가게임을 하듯 벽돌을 높이높이 쌓는다고 완성할 수 없다. 중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밑부분을 두텁게 탄탄히 다져야(저학년 기본 개념) 그만큼 위로 높이 쌓는 것(수능 고득점)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의 수학공부방법은, 튼튼한 자재로 쌓는 성이 아니었다. 빨리빨리 높이 올리고 싶어 단순히 모래를 바닥 위에 자꾸자꾸 들이부었다(개념이해 없는, 양만 많은 문제 풀이). 계속 붓다 보면 모래성이 높아지겠지. 다지는 과정 없이 그냥 쏟아붓기만 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즉 난이도가 높아지면 자꾸자꾸 나의 수학점수 모래성은 깎이고, 흔들리다가 결국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어떻게 공부했어야 할까.
중학교 때,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했을 때 다른 친구들보다 기초가 부족해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아무리 급해도 제 학년의 중학교 문제집이 아닌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다시 펼쳤어야 했다. 아무리 내가 중학교 1학년이어도 학습 결손이 시작됐던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의 개념부터 차근차근 다질걸. 초등학교 3학년 개념이 완전히 이해된 후 4학년 교과서를 보고, 그렇게 순차적으로 제 학년 교과서까지 다진 후 어려운 문제를 풀어볼걸.
지금 보니 수학공부 말고 다른 공부들도, 아니 살아가며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도 그런 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아무리 급해도 가장 처음 발생한 문제부터 해결하기. 대충 넘어가지 않고, 어려운 점을 제대로 직면하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기
건강 관리를 하고 싶으면 수십만원짜리 건강식품을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 세 끼 싱싱한 채소와 가공되지 않은 고기를 곁들여 적당량 먹는 것부터.
예뻐지고 싶으면 비싼 화장품을 사거나 고가의 피부관리, 옷을 결제할 것이 아니라
세안을 꼼꼼히 하고, 매일 피부와 두피의 각질을 관리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몇 가지 옷을 보풀 없이 잘 세탁해 관리하는 것부터.
인간 관계를 잘하고 싶으면, 현란한 대화 스킬을 익히거나 이런 저런 술자리 모임에서 밤을 샐 것이 아니라
한 사람과 대화해도 눈을 맞춰 경청하고, 공감하고, 그 사람이 싫어하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부터.
되돌아보면 내가 했던 모든 미숙한 행동들, 후회되는 순간들은
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해 생긴 일들이었다.
앞으로 써나갈 후회막심 스토리들이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