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시간을 혼자 알차게 보낼 걸

딸린 식구 없을 때, 나만의 공간에서 여가 시간을 혼자 알차게 보낼 걸

by 책하마

2010년 3월 1일자 나의 첫 발령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중학교였다. 지금은 지하철역이 생기고 번화가가 됐지만 당시는 주변에 작은 상가도 몇 개 없이 낙후된 곳이었다. 교통시설 미비로 통근은 꿈도 못 꿀 만한 곳. 울며 겨자 먹기로 10평짜리 원룸에서 자취를 했다. 당시 전세 4000만원짜리 원룸. 나의 첫 번째 집. 첫 번째 나만의 공간이었다.


퇴근하고 들어온 나만의 공간은 언제나 어수선했다.

혼자 사는 데 뭐가 필요한 지 몰라서 여기저기 조언을 듣고 산, 혹은 받은 물건들은 대부분 불필요했다. 이런 물건들 뿐 아니라 집주인이 쓰던 낡은 TV, 거실장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내가 안 쓰는 물건이라면 거절하고, 집주인에게도 치워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런 말이 어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방치했다. 뒤죽박죽 어지러운 나의 공간에서는 마음도 어지럽고 싱숭생숭했다. 어찌할 줄 모르고 멍하니 있으면 카톡이 오곤 했다.


"쌤~ 뭐해? 원래 막내일 땐 자기 돈으로 혼자 저녁먹고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 근처에 있어~"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불려 나가 매일같이 와글와글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떠느라 잘 시간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날 챙겨주던 그 분들 모두 정말 자상하고 친절한 같은 학교 선배 선생님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달리 외향적인 성향이었다. 내가 혼자 있으면 오히려 축 처지고 외로워 할 것이라 생각해 챙겨 주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생각과 반대로 혼자 쉬어야 하는 내향인이었다(그땐 그들 뿐 아니라 나도 나 자신을 잘 몰랐다.)


10여년 전에는 MBTI같은 것들도 대중화되지 않아 내향인, 외향인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젋은 나이일수록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활발하게 지내야한다는 인식이 대세였던 것 같다. 모임에서도 조용히 머물기보다는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고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것이 20대에 중요하게 갖춰야 할 자질이었다. 나는 그게 어려웠는데, 자꾸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그런 능력(?)이 생겨 쉬워지겠지 여겼다.


외향적인 선배 선생님들은 본인들과 비슷한 또 다른 외향적인 선생님들을 자꾸만 데려왔다. 그들의 말을 모두 경청하고 적절히 반응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러면서 배울 점이 있겠지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했고 막내인 내게 한가지라도 더 조언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그들이 내가 몇 년간 학교를 옮기고,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는 동안 얼굴도 이름도 까맣게 잊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20대 중반이니? 참 좋을 때다~~~

결혼할 땐 ~한 사람이랑 해라~ 아니다~ ~한 사람이랑 해라~

결혼 준비할 때 ~ 한 건 꼭 해라~ 아니다 필요 없다~

애는 빨리 낳아라~ 아니다 좀 천천히 가져도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할 땐 ~해라~ 수업할 땐 ~해라~

학교라는 곳은 ~가 문제다~ ~를 해야 한다~

돈 모을 땐 ~ 해야 한다~

등등등등등등등등 그들은 나에게 수많은 조언을 했다.


내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아낌 없는 조언을 해 주시는구나. 잘 들어야겠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내가 그들의 나이가, 아니 그들보다 훌쩍 넘어선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그들은 날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이었던 인생 넋두리들.


예민하고 내향형인 나는 물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웃고 떠들었지만 휴식을 취할 순 없었다.

분명 잘 놀았다고 생각했으나 점점 지쳐갔다. 왁자지껄하게 시간을 보냈는데 마음은 공허했다. 내가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내심 그걸 원했는데 뭔가 그땐 20대 한창 좋을 때 혼자 있는다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SNS에서는 모두 맛있는 것을 먹고, 핫플레이스를 다니고, 많은 사람들과 사귀고 있는데 나만 이 좋은 나이에 못 그러면 찌질해질 것 같았다.


결혼하고 애 키우면 사람들 만나서 놀러다니는게 어려워져.

이런 말을 들으며 열심히 친목질을 하며 지냈는데-


막상 결혼하고 애 키우니

더 많은 사람을 못 만난 것, 더 많이 약속을 잡지 못한 것, 더 활발하지 못했던 게 후회되는 게 아니라

그 귀중한 시간에 온전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너무너무 후회가 된다.


작은 자취방이어도 나의 첫 집을 애정을 가지고 잘 꾸밀 걸 그랬다.

거창한 인테리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게 꼭 필요한 물건만 잘 정리해 놓고, 어설픈 비키니옷장 대신 깔끔한 행거를 놓고 자주 입는 옷들만 걸어놓을 걸. 집주인의 낡은 TV와 거실장은 치워달라고 하고 그 자리에 작은 책장과 탁자를 놓을 걸. 그리고 불필요한 선물들은 정중히 거절하고 그 자리에 내 취향에 맞는 블루투스 스피커와 커피메이커를 놓을 걸. 내 취향으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 퇴근하면 자극적인 안주거리 대신 싱싱한 식재료를 사서 간단하게라도 저녁을 혼자 차려 먹고, 탁자에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쓸 걸.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나오면 금상첨화일 텐데. 그 많은 저녁약속들.. 좀 거절하고 혼자만의 그런 시간들을 가질 걸.


평일 중 삼일은 그렇게 하고, 나머지 이틀은 뭐든 배우러 다닐 걸.

인생 조언 수다들 말고, 문화센터든 학원이든 다녀볼 걸. 다른 누군가와 함께 무리지어 다니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유용한 분야를 찾아서 배울 걸. 안 그래도 고등학교로 발령나니 특수학급 수업으로 제과제빵, 바리스타, 공예 수업을 할 일이 많았다. 그때그때 유튜브 영상으로 독학을 하며 학생들에게 간단한 기술들을 가르치지만 뭔가 주먹구구식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운 후에 학생들을 가르치면 수업도 수월하고 나도 뿌듯할텐데. 하지만 워킹맘으로써 이걸 배우러 다니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후회가 많이 된다. 혼자 살던 그 시절에 취향에도 안 맞는 억지 친목질 대신 내 커리어에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나 많이 배우러 다닐 걸. 오롯이 혼자서. 바리스타, 제과제빵, 공예, 원예 등등 배울 것은 정말 많았는데.


지금보다 아이가 한창 손이 많이 가던 시기에, 내가 못 했던 것들이 자꾸 생각나 사무치게 후회가 됐다. 아이를 키우며 혼자만의 시간이 가장 절실했고, 아쉬운 대로 짬짬히 시간을 내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사는 세 식구의 보금자리이지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이 아니다. 그리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도 아니다. 집을 오래 비우고 뭘 배우러 나갈 수도 없다. 물리적인 제약이 커지자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며 아쉬워하곤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 10평 원룸을 이렇게 꾸밀 텐데. 괜히 1인용 가구들을 찾아보고, 근처 문화센터 강좌들을 들여다보며 씁쓸히 웃었다. 워킹맘이 되니 머릿속으로만, 퇴근 후 여가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쏟는 상상들을 한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점점 학년이 올라가니 여유시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여가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를 키우며 뼈져리게 깨달았기에 이제 이걸 절대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제 혼자 살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도 어느 한 공간은 나만의 서재를 꾸며 마음의 안정을 얻어야지. 그리고 아이가 자라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만큼 나도 이것저것 혼자 하는 새로운 배움에 도전해야겠다. 후회만 하지 말고.. 이제라도 조금씩 실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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