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아예 하지 말 걸

SNS는 아예 하지 말 걸

by 책하마

2004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는 디카로 학교 축제와 체험학습에서 날 예쁘게 찍어줬다. 사진이 잘 나온 것 같아 다음 날 친구에게 사진파일을 갖고 싶다고, 컴퓨터 시간에 컴퓨터실에서 내 USB에 좀 옮겨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이야기했다.

"내 싸이 사진첩에 있으니 퍼가. 요즘 누가 USB로 사진 파일 주고받냐 이 촌스러운 년아 ㅋㅋ"


공부만 하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그렇게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싸이월드를 알게 됐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싸이질'을 시작했다(2006년-2010년).


여대생이 됐으므로 공부만 하던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예뻐야 했다.

옷도 잘 입고, 잘 놀러다니고, 친구도 많아야 했다. 아니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싸이월드 사진첩에 그렇게 보이는 모습을 찍어서 올렸다.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똑똑하기까지 한 여대생으로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싸이월드 다이어리에는 대학생다운 패기, 열정, 도전정신이 가득한 문구들을 적어서 올렸다. 싸이월드 다이어리가 실제 물건이라면 불태우거나 폭파시켜 흔적도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오글거리게.


나는 어디서 돋보일 만큼 예쁘지도 않고, 인기가 많지도 않았다. 모두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싸도 아니었고, 금수저도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여대생이었다. 나의 본모습은 2000년대 초반 자기계발서에서 추구하던 신여성들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하지만 싸이질을 하자니 남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꾸며 전시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며 싸이월드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대세에 따라 페이스북으로 갈아탔다(2011년~2015년).


사회초년생이고 신혼일 때, 나는 사랑 받는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핫플레이스에서의 데이트 사진, 선물 받은 사진, 프로포즈 받은 사진... 그 와중에 대학원에서 논문까지 써서 통과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남들에게 사랑스러운 여자로, 야무진 커리어우먼이나 알파걸로 보이고 싶었다. 취향에 맞지도 않게 사람이 바글바글한 핫한 여행지에 억지로 가서 인증샷을 업데이트했다. 싸이월드보다 쉽게 사람들의 반응을(좋아요 누른 횟수) 확인할 수 있는 페이스북은 그 재미가 더했다.


육아를 시작하니 카카오스토리로,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탔다(2016년~2023년).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친구가 되니 자기관리도 하면서 육아도 잘 하는 엄마로 보이고 싶었다. 매일 목 늘어진 티셔츠 쪼가리나 입고 운동하면서 어쩌다 어느 날 예쁜 운동복을 입고 운동하는 사진을 올렸다. 아이와 잘 하지도 않는 촉감놀이를 마치 매일 하는 것처럼 올렸다. 아이랑 어떤 건강한 반찬을 만들어 먹는지, 얼마나 많은 경험들을 하며 알차게 하루를 사는지 전시하기 바빴다. 막상 전시한 하루의 모습은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SNS에 올리니 매일의 일상을 현명하고 예쁜 엄마로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보여지는 내가 만족스러웠다. 사실 나는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운동하지도 않고, 퇴근하면 만사가 귀찮아 아이에게 반찬을 사 먹이면서. 아이와 그렇게 특별한 활동을 매일 하지도 않으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모습을 전시하느라 더 지쳤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를 세던 어느 날, 내가 지인의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눌러 놓고 그게 무슨 내용이었든지 금새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그 지인의 일상에 평소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도. 그 지인이 인스타에 멋진 모습을 올리면 속으로 칭찬하고 부러워기보다는 불편하게 느꼈다는 것도.


SNS에서의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과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별로 궁금해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는 것도.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은 가족들이나 한 두 명의 오랜 찐친들이며 그 사람들과는 SNS가 아니라 직접 만나 소통하고 대화한다는 것도.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SNS의 한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악마처럼 만들고, 비방하며 깎아내리고 조롱하기도 한다는 것도. 그러자 무서워졌다.


카카오톡 이외의 모든 SNS어플을 지워 보았다.

그러자 일상이 심플해졌다. 내 모습을 꾸미지 않아도 됐다.

남이 아닌 아이가 좋아하는 단순한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내가 느끼기에 편한 옷을 입고 진짜로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다. 전시하기 위한 핫플레이스를 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조용하고 잔잔한 여행을 하게 됐다. 내가 핫플레이스로의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SNS를 끊고 최근에야 깨달았다.


진작에, SNS를 하지 말걸 그랬다.

그럴 시간에 나만의 사진첩을 만들어 간직할 걸. 그러면 진짜 나를 궁금해하는 소수의 사람들과만 함께 보고 웃을 수 있을 텐데.

나만의 일기장에 일상을 솔직하게 적을 걸. 그러면 일기를 쓰면서 진정으로 내면을 치유할 수 있었을 텐데.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어플이 지워진 그 자리에

브런치스토리를 깔았다.


앞으로 나만의 솔직한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좋은 모습도 못난 모습도 모두 다.


책하마, 라는 나의 또다른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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