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말을 너무 잘 듣지 말 걸

어른들 말을 너무 잘 듣지 말 걸.

by 책하마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 말을 참 잘 듣는 아이였다.

착하고 겸손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사소하든 중대하든 결정해야할 일이 있으면 고민이 많이 됐고, 그럴 때마다 곁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어른들의 조언을 많이 들었다.

엄마, 아빠, 선생님들.... 결혼하고나서는 시댁 어른들의 말씀까지. 내 스스로 고민하고 알아보고 결정하기보다는 어른들의 조언을 따른 적이 많았다.


내게 조언을 해 주신 어른들은 대부분 현명하셨고,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하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 분들도 결국 늘 시행착오를 겪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게다가 옛날 분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도움이 됐던 조언도 많았지만, 참 부적절한 조언도 많았다.


물론 온전히 내가 결정했어도, 지금보다도 어리고 미숙한 나였으므로 참 어리석은 선택들을 많이 했겠지.

하지만 마음속으로 원망이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내 선택이므로 내 책임이니까.

하지만 같은 어리석은 결정이어도, 남의 조언을 듣고 내린 결정에는 마음 한켠에 원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차라리 어리석더라도 온전히 내가 고민해서 결정할 걸 그랬다.


첫 번째 후회되는 선택은... 20대 초반에 엄마와 함께 옷을 사러 다녔던 것.

엄마는 나랑 옷을 사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물론 싫어하지 않았다. 내 돈 들이지 않고 새 옷이 생기니까. 하지만 엄마는 내가 고르는 옷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엄마 눈에 예쁜 옷을 은근히 내밀었다.

"넌 고등학교 때 공부만 해서 그런지 옷을 보는 안목이 진짜 없다. 엄만 대학다닐 때 옷 잘 입는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 엄마가 옷 보는 안목이 좀 있단다."

엄마가 고른 옷들은 물론 아주 고급지고 여성스러웠다. 하지만 지나치게 레이스가 많고, 학생답기보다는 어설픈 모델 의상같은 느낌이었다.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에 나풀나풀한 캉캉 스커트 등... 색깔도 진한 분홍색, 자주색, 노랑색... 뒤늦게 알게 된 나의 퍼스널컬러와 정 반대되는 그런 색들. 차라리 그 때 흰 티에 청바지만 입었으면 훨씬 더 예뻤을 걸.

물론 엄마는 젊었을 때 옷을 잘 입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Y2K패션이 20여년만에 다시 유행해도 뉴진스의 데뷔 무대를 보다가 SES의 데뷔 무대를 보면, 비슷하면서도 후자가 묘하게 촌스러운 것처럼.. 엄마는 나와 세대가 달랐다. 그리고 엄마 눈엔 물론 내가 공주 같고 지나다니는 여대생중에 가장 예뻐보였겠지만. 그래서 공주처럼 모델처럼 입는 것이 어울릴거라 생각했겠지만.... 엄마 눈에야 그렇지, 남들이 보기에 나는 길거리에 지나다니면서 마주쳐도 전혀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오히려 화려하게 꾸밀수록 역효과가 나는 여름쿨톤 퍼스널컬러의 소유자!! 그렇게 싸이월드시절 사진첩에 온통 흑역사만 남겼다.


두 번째 후회되는 선택은... 신혼집을 구하고 인테리어 하는 데 어른들의 조언을 들은 것.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신혼집은 작은 평수의 집을 구하고 살다가, 돈이 모이고 아기를 가지면 평수를 넓히는 것이 정석이랬다. 그리고 집값은 지금이(당시 2014년) 최고가이고 반드시 하락할 것이므로 전세를 얻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2014년은 매매가와 전세가가 천만원 정도밖에 나지 않아 갭투자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전세가율이 높다는 것은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큰 것이었는데(실제로 그 이후 10년동안 집값은 두 배 넘게 올랐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전세집을 얻었다. 그리고 신혼집에서는 오래 살지 않을 것이고 아기가 생기면 넓혀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전세, 매매가가 별 차이가 없으니 대출을 조금 더 얻어서라도 소형 평수의 집을 매매할 것 같다. 가구나 가전도 작은 것으로 최소한의 물건만. 어른들은 냉장고도 무조건 커야 한다고 했고, 화장대도 옷장도 이불장도 꼭 넉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래놓고 보니 우리 부부의 생활 패턴에는 맞지 않았다. 우리는 어른들과 다르게 냉장고에 식재료를 가득 채워 넣고 요리를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그날 만들어 먹을 식재료만 조금 사서 넣거나 반찬가게에서 사 먹었다. 그래서 냉장고가 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또래들에 비해 화장을 많이 하지 않아 화장대도 필요가 없었다. 책 한 권 크기만 한 바구니 안에 내가 쓰는 로션과 메이크업 베이스, 선크림이 모두 들어가고도 남으니 욕실 한 켠에 놓으면 충분했다. 또한 우리 부부 둘 다 패션과 코디에 큰 흥미도 소질도 없는 터라 옷은 계절별로 몇 가지만 구비해놓으면 끝이었다. 그래서 옷장보다는 행거 몇 개면 충분했다. 오히려 옷장이 크니 먼지가 쌓여 관리가 힘들었다. 이불도 어른들 말처럼 계절별로 몇 개를 쟁여놓을 필요가 없었다. 요즈음은 아파트에 난방이 잘 되고 20평대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겨울 구스다운 이불같이 부피가 큰 이불도 우리에겐 불필요했다. 이불장보다는 이불 보관 진공팩 몇 개면 충분했다. 신혼 때 어른들의 조언을 듣고 별 생각 없이 전부 구비했다가, 시간이 지나며 불필요한 것을 처분하는 데 돈도 시간도 참 많이 들었다. 그리고 불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줄이니 아이가 있어도 굳이 넓은 평수로 집을 넓힐 필요가 없다. 애초에 신혼집을 구할 때 작은 평수를 매매하여 깔끔하게 수리한 후 오래 사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세 번째 후회되는 선택은.. 억지로 맞춘 결혼 예물과 그에 따른 예단비였다.

우리 부부는 연애한 지 1년 됐을 때 14k짜리 작은 커플링을 맞췄다. 가성비 좋고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커플링이었다. 그래서 결혼반지는 따로 필요가 없다고 합의하고 예물 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했었다. 게다가 나는 평소 아주 작은 귀걸이 이외에는 악세사리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예물을 안 할거라고 하자, 시어머니께서는 정색을 하셨다. "결혼 예물은 일생에 한 번 뿐인데 나중에 분명히 후회한다. 꼭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런가보다 하고 예물을 맞췄는데... 최대한 심플한 것으로 고른 우리의 의견은 묻히고.. 시어머니가 고른 금은방에서 아주 뚱뚱하고 굵은 반지를 맞추게 됐다. 그리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 번쩍번쩍한 귀걸이까지..;;

물론 시부모님은 내게 비싸고 좋은 보석으로 선물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너무 감사하지만, 반지도 귀걸이도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고 불편하여 도저히 착용하고 다닐 수가 없었다. 한 달 정도 의무감으로 하고 다니다가 결국 그 악세사리들은 집구석에 쳐박히는 신세가 됐다.

게다가 시부모님이 선물하신 예물에 대한 대가로 친정부모님은 예단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양가 부모님 모두 너무 감사하지만, 도움 주실 바에야 차라리 시어머님의 예물비, 친정부모님의 예단비를 그냥 합쳐서 현금으로 우리의 신혼집 마련에 보태 주셨다면 훨씬 더 유용하 않았을까.


어른들의 젊은 시절 최고였던 선택지들은 세월이 흐르며 당연히 퇴색됐다.

어른들은 나와 세대도 삶의 방식도 가치관도 다르다. 그리고 타고난 성향도 다르다. 미숙하고 어리석더라도 내가 스스로 많이 고민할 걸. 주변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도서관에 가서 스스로 공부하고 결정할 걸. 그런데 내가 20대이던 10년 전보다도 요즈음은 더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들을 다양한 창구에서 얻을 수 있게 됐다. 도서관 말고도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10대, 20대인 친구들은 이제 삶에서 다양한 선택들을 할 때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좀 더 쉬워진 것 같다. 부디 나 같은 꼰대들의 조언을 듣기보다는 보다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기를 응원한다.


아.. 이것도 꼰대의 조언인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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