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동거
원룸에서 딱 일 년을 생활을 했는데, 여자 혼자서 지낼 곳은 못 됐다. 방음시설이 제대로 안 돼 옆집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고, 더구나 옆집 남자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비 오는 어느 날, 자신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내 집 보안키를 누를 때는 집안에서 벌벌 떨어야만 했다. 결국 옆집 남자는 죽은 지 사흘 만에 원룸을 나갔다.
나는 더 이상 원룸에 거주하고 싶지 않아서 주택의 1층 월세에 살기 시작했다. 2층에 주인 할머니 부부가 거주했다. 치안은 안전했으나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택이 낡아서 층간소음이 발생했다. 주민 할머니는 미리 수술을 했다며 거실을 걸을 때도,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때도 조용히 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어느 날은 문을 두드리며 슬러퍼를 던져 주며 신고 다니라고 했고, 어느 날은 카펫을 던져 주며 거실에 깔라고 했다. 더구나 내 집 열쇠를 가지고 다니며 가스점검이나 기타 필요한 용건이 있으면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수시로 드나들었다. 명백히 주거침입이었으나 나는 을의 입장이라 항의하지 못했다. 삼 년을 거주했고 주인 할미니와 대판 싸우고 이사를 했다.
그즈음 나는 코로나로 인해 실직을 했고, 월세도 부담이 됐다. 그러다가 주거급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신청을 했다. 이후에 주거 복지 수급자가 되고, 임대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게 됐다. 임대 아파트는 치안에도 안전하고 주인 할머니의 간섭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거실에서 깨금발로 다니며, 물도 세게 틀지 못한 서러움이 한방에 날아갔다.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안락한 나만의 공간이 생겨 기뼜다. 더구나 주거 급여 수급자로 저렴한 임대료도 나라에서 지원해 주어 실직자인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혜택이었다. 여태껏 주거급여의 혜택을 알지 못해 비싼 월세를 지불하며 거주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임대 아파트의 거주는 나에게 평온함을 주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화분이나 나무, 벤치가 잘 조성돼 더운 여름밤이나 주말에 앉아서 쉴 수도 있고, 이웃과도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또한 거실의 형광등 한쪽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혼자서 갈아 끼울 수가 없어 몇 달을 방치했다. 그러다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형광등만 사놓으시면 갈아드릴게요."
형광등을 구입해 놓으니 단 몇 분만에 몇 달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니 바로 해결해 주었고, 주방에 수도꼭지에 물이 세 전화를 했더니 주말인데도 금방 고쳐주었다. 여자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민원들은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하니 친절하게 해결해 주어 더없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거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치매진단을 받은 엄마가 내 집에 오게 됐다. 아버지는 힘들다며 요양원에 보내려고 해 내가 모셔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엄마는 평일에는 집 근처의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게 됐다. 주말에는 내가 모셔야 했는데 문제는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1층의 야외로 나왔다. 1층의 야외 공간은 넓어서 벤치가 있고, 치매 친화마을 경로당이 위치하고, 놀이터가 자리하고, 국공립어린이집이 있었다. 보통 주민 어르신들은 코로나 여파로 경로당이 폐쇄돼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보통 스무 명 정도 앉아서 담소를 나눴다. 오후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도 탔다. 어른과 아이들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엄마도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바람이 부는 소나무 아래서 지나가는 차도 구경하고 사람들도 구경했다. 주변에 또래의 어르신들이 앉아 있으니 적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곳 벤치가 놓인 곳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도 했다. 어르신들을 위한 창극 공연도 열렸고, 어린이집에서 물놀이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어린이집 앞에는 텃밭 상자가 조성돼 상추, 오이, 고추, 방울토마토, 블루베리가 무럭무럭 자랐다.
여느 날처럼 엄마는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고 있었다. 엄마는 차를 유독 좋아했다. 근처에는 이른 아침을 먹은 할머니 몇 분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용변이 급했다.
"엄마,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7층으로 달려가서 볼일을 보고 왔다. 그런데 엄마의 못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를 외치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벤치가 앉아 있던 한 할머니가 말했다.
"관리 사무소 쪽으로 내려가던데."
나는 부리나케 내려갔다. 관리사무소 옆 놀이터도 어르신들이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그곳은 지대가 낮아 바람이 더 많이 불고 시원한 곳이었다. 놀이터 벤치에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앉아있었다. 그 무리 속에 도넛을 입에 물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도넛을 하나 줬더니 잘 드시네."
벤치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나와도 안면이 있는 분이다. 아흔을 넘긴 할머니로 남편분이 호박죽 한 그릇을 먹고 저세상으로 떠났다며 말하곤 하셨다. 목청이 카랑카랑하며 쪽머리셨다. 손뼉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항상 즐겁게 사시니 건강하신 것 같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엄마는 데리러 가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엉덩이를 들지 않는다.
"좀 더 놀다가 가게 놔두어요. 도넛도 하나 더 먹고."
할머니의 그 말이 나는 고맙다. 또래 어르신과 어울려 생활할 수 있는 임대아파트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