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훔쳐다 빌린 척했었다

by Seon

가진 게 많을수록 우울하다

내 손바닥엔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데

지금 보니 단 하나도 잡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들만 골라서 사랑했던 거야

내가 얻은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들만이

내 곁에 남았다

그 어떤 것도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없어

나는 처음부터 가질 수 없었던 거야

그저 잠시 차용했던 행복에 불과하지


장마도 우산도 비에 젖은 셔츠도


검은색이 되어버린 교복도


멈출 수 없던 웃음도


우리는 결국 우산을 접고 비를 맞았다

우산을 접지 않아도 우산을 접은 후와 다를 게 없었다

우리는 그날 장마를 가졌다

손안에 든 것은 축축했고 나는


사방으로 내리는 비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우리는

우산을 편 거다

생쥐 같은 꼴을 하고선

빗소리에 묻혀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그래서였을까

말을 하지 않아도 나오는 웃음에 우리는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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