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훔친 것마저 비 냄새가 자욱하고

by Seon


우리가 또다시 수줍게 비를 맞고

장마를 가진 그날이 와도

우리는 여전히 우산을 썼을까

서로 다른 온도를 지탱하던 몸이 끌어안은 그렇게

비를 맞은 체온이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장마를 손에 넣었었는데

비가 왔던 그날

너는 우산을 폈었고

사방으로 튀는 비를 보라며 난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휴대폰을 넣으라 했지

그렇게 우리는 젖어가는 서로를 보며 웃었어

빙글빙글 돌면서 걸어보기도 하고

빗물을 먹은 입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입을 멈추는 대신 손을 잡고

웃으며 뛰었잖아

뛰어가다 멈춰서 화단 앞에 있는 장미를 보았는데

나는

장미가 비에 젖어갈 때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어

너는 바보같이 꽃을 꺾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가시가 있어 다칠까 싶었던 내 손이 너를 막았지

붉은 장미만 보면

비가 쏟아지는 날의 여름이 오면

너는 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면서

여름에 존재하던 모든 것은 전부 우리의 것이었는데

너는 그걸

잠시 빌린 거라 생각했었니

언제든 돌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날 우린 사실

장마를 훔쳤던 거지

그런 거지 k야

너는 내게 비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줬지

나는 더 이상 비가 두렵지 않아 하늘이 뚫릴 듯 비가 오는 날에도 더 이상 너와 함께 한 그날처럼 머뭇거리지 않아 너는 내 손을 잡고 나보다 먼저 비를 맞았지 그래서 그런 건가 너는 왜 아직도 비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너도 혹시

그때의 나처럼 아니 그럴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뜨겁게 사랑했었던 계절의 증명을 기다리니

장미를 잡아 억지로 깊은 장마에 넣어도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생기를

짙은 여름을 갈망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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