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2

by 깊고 푸른

물 한 병을 가방에 넣고, 모자를 쓰고 가현산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아침부터 날이 추워서 가기 싫은 마음이 일어도,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서해 바다와 강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홀로 떠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풍경 사진을 찍어서 언니와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찍지만 구름이나 나무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가현정 쪽으로 내려오면서 손에 들어오는 작은 돌을 몇 개 줍는다. 삼형제바위 곁을 지날 때 바위 위에 쥐고 있던 돌을 하나씩 올려놓는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내게는 아들이 셋 있다.

삼 형제.

그들이 내게 와준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도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들은 내게 와서 어땠을까?


난 그리 현명한 엄마는 아니었다. 주위의 어려움으로부터 그들을 적절히 보호하지는 못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이 남편과의 불화였다.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 생각하는 방법이 너무 달라서 끊임없이 다투고 불화가 생겼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들은 조금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게 까칠하다.

어느새 그들은 내 곁에 있지만 나보다 훌쩍 커버렸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나의 짧은 생각으로 판단하거나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묵묵히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자신감을 가지고 천천히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성실하게 생활하면서 행복감과 편안함을 찾기를 바란다.

아들들은 내게 속 깊은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들이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 그 어려움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어찌 되었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난 아직도 남편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남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다투지는 않는다. 다르더라도 싸우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이다. 도리어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시간이 되면 아들들하고 주변의 맛집에 가서 밥을 먹고, 가까운 카페에 가서 마주 보고 않아서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움이다.

그들이 편안하게 잡담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다. 조금 늦었지만 그들과 소소한 편안함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느껴 보고 싶다.


오늘도 삼형제바위에 작은 돌을 올려놓으며 우리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다.

"구원이란 자신의 불운에 슬쩍 미소 짓는 것."이라는 말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난 나의 불운을 마음 편히

되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기질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그 많은 삶의 굴곡 속에서 내가 그들에게서 위안을 얻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처럼,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그들을 바다처럼 사랑하는 부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