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여자로 키워졌으며, 여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결혼은 내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그 사람은 예민하지만, 나는 둔감한 편이다.
그 사람은 성격이 급하지만, 나는 느린 편이다.
그 사람은 몰입하는 스타일이지만, 나는 배회하는 스타일이다.
그 사람은 이기적이지만, 나는 이해심이 없는 편이다.
그 사람은 어지르는 스타일인데, 나는 게으르다.
그 사람은 검소하고 인색하지만, 나는 계산이 느린 편이다.
우리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차이점이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만나서 사랑했다.
젊었고,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잘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결혼했다.
한 동안은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럭저럭. 살았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더 차이점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화가 심해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무수히 서야 했다.
선택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버텨온 시간들도 많았다.
힘들고, 외롭고, 답답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마음을 느낀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생각과 선택을 인정해 주면 되는 것을 배웠다.
좀 더 이해해 주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의 마음도 커졌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난 단단해졌고, 여유가 생겼다. 그와 의견이 다른 불편한 상황도 웃으면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사실들도 나를 편안하게 한다.
우리는 몸이 약해져서 혈압약을 먹게 되었고, 눈이 어두워져서 돋보기를 써야 하고, 기억력도 나빠져서 길을 헤매기도 한다. 흰머리도 많아졌고, 목소리도 좀 낮아졌다.
난 산책을 좋아한다.
오늘도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햇 살 속으로 나선다.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나 혼자서 걸어도 좋다.
내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다.
나는 그냥 나이고, 나 자신일 뿐이다.
나는 내편이고 나를 사랑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햇살 속으로 나아간다.
또다시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칠 것을 안다.
삶이란 불합리하고,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의 연속인 것 같다.
그 물살 속에 떠 있어서는 안 된다.
인생이라는 흐름의 강물 속에서도 바닥에 발을 디디고, 내 힘으로 한발 한발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강바닥에 어떻게 발을 디뎌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때로는 발을 잘못 디뎌서 허둥대고,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닥에 발을 딛고 서있는 느낌을 안다. 또다시 길을 잃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와 함께 걸어간다.
내 마음은 쏟아지는 햇살처럼 따뜻하고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