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패키지여행

by 숭늉

최근 패키지 여행으로 베트남 다낭을 다녀왔다. 방학도 아니고 연말연초도 아닌 애매한 시기인 데다, 베트남이 현재 우기인 터라 추가 옵션비를 제외하면 인당 20만원 초반의 저렴한 가격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이래서 남들 일할 때 놀아야 한다. 백수 만만세!


간만의 여행은 매우 즐거웠다. 최근 몇 년간은 여행을 가도 내가 지금 힐링 찾을 때가 맞나... 하는 찝찝한 기분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는데, 마침내 합격 후 발령대기라는 떳떳한 신분으로 바다를 보며 코코넛주스를 마시니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두리안은 고약한 냄새와 다르게 매력적인 맛이었고, 따뜻한 날씨도 마음에 들었다. 여행 중 방문한 식당의 '경기도 다낭시 명동식당'이라는 간판을 보고는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완벽한 여행에서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게 패키지 여행이었단 점이다. 물론 패키지는 떠먹여주는 일정을 즐기면 되고, 가격도 착하고, 버스에 비몽사몽 타면 사진스팟에 떨궈주는 등 좋은 점이 참 많다. 하지만 패키지에 좋은 점만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자유 여행을 왜 가겠는가! 일장일단이라고, 매사에 장이 있으면 단이 따라오는 법이다.


일단 첫 번째, 낯선 사람 열댓 명과 부대끼며 지내야 한다. 그리고 그 열댓 명이 모두 나이스하고 상식적이며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일 확률?... 사실상 매우 낮다. 물론 '나이스하고 괜찮은 사람'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이기에 이번 여행에서 누군가가 명백한 빌런이었나?라고 묻는다면 답하기 애매하다. 하지만 "세상에 10명이 있으면 1명은 날 좋아하고 7명은 큰 관심이 없고 2명은 나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이 많아질수록 서로 상성이 안 맞는 조합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가이드와 일부 팀원들이 그 "안 맞는 조합"이었다. 가이드는 전반적으로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종종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한 농담, 특히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멘트를 던지곤 했다. 무던한 나도 불편했으니 사실 상성을 떠나서 가이드의 언행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에 대해 특히 불쾌감을 강하게 느낀 팀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불쾌감은 때로 숨겨지지 않았기에, 가이드도 그들이 본인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음을 느낀 눈치였다. 소심한 평화주의자인 나는 가끔 느껴지는 신경전의 순간마다 성실하게 식겁했달까. 어우, 어디서 한기가...


우리가 여행을 갈 때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주변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와 낯섦을 기대한다. 그런데 패키지는 간단히 말해, '익숙한 맛의 조직생활'이다. 일정을 함께 진행하다 보면 멤버들 간에 관계가 형성되고, 캐릭터 파악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스몰토크도 때론 필요하다. 그게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들에게 치이다 힐링하러 온 사람에겐 상당히 고역일 것이다.


그리고 패키지에는 조직생활의 맛만큼이나 익숙한 맛이 녹아있었다. 바로 자본주의의 맛!


3박 5일의 짧은 일정 중 마지막 날은 절반 이상이 쇼핑센터 투어였다. 한국인들이 아무리 쇼핑에 환장한다고 해도, 투어에서 반강제로 데려가는 쇼핑 일정까지 즐거워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날 노니와 침향 판매점, 커피가게, 잡화점에 들렀는데 가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우리를 안쪽의 크지 않은 방(나는 '영업의 방'이라고 이름 지었다)으로 데려가 끝내주는 영업 차력쇼를 펼치셨다. 정말이지... 다들 베트남 생활이 지겨우면 접고 한국에 들어와 홈쇼핑 쇼호스트로 활동해도 될 만큼 에너지와 입담이 굉장했다. 내가 돈을 벌고 있었다면 아마 호로록 설득당해 침향으로 혈관 건강을 챙기고 노니로 염증도 잡고 향 좋은 위즐커피도 쟁이고, 하며 가이드가 만족해할 우수 호갱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 지갑 사정이 귀여운 상태라 다행이었다. 휴우.



그런데 사실 노니와 침향을 파는 곳에서는 약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가장 좋은 전략이 무엇이겠는가.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영업의 신은 당장 이걸 먹지 않으면 몸에 몇 년 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뉘앙스까지 풍기곤 했다. 이미 염증이니 혈전이니 온갖 안 좋은 게 층층이 쌓인 몸에 이 제품만이 해답인 것 같이 말하면 누군가는 지갑을 열게 되어있다. 간만에 일상의 고민걱정에서 벗어나 야자수를 감상하던 우리에게 갑자기 경동맥이 어쩌고, 뇌졸중이 저쩌고, 하니 다들 얼굴이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그 전날 우리를 삼겹살집으로 데려가 혈관에 기름칠을 제대로 시켜놓은 참이었다!)


패키지는 어쨌든 여행 산업의 '상품'이고 이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이러한 쇼핑 코스에 불만은 없다. 그건 동남아에 놀러 와서 후덥지근하다며 불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다만 여행을 계획하며 패키지와 자유여행 사이에서 고민할 때, 각 선택의 장단점을 따져보고 나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다. 예산과 편리함을 생각하면 패키지가 압도적으로 우위이고, 여행의 순수한 낭만을 살리려면 자유여행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을 패키지로 간 것에는 후회가 전혀 없다. 패키지의 단점을 실컷 써놓고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종합적으로 장점이 훨씬 많았다. 매우 저렴한 가격에 계획 없이 몸만 덜렁 가서 이렇게나 즐거운 추억을 쌓고 올 수 있어 몹시 만족스럽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잘못 쌓은 두 개의 벽돌을 들여다보느라 우리는 종종 완벽하게 쌓은 998개의 벽돌을 보지 못한다."


패키지에서 느낀 약간의 아쉬움으로 행복했던 대부분의 기억을 덮는다면 그만한 바보도 없을 것이다. 여행에서 남긴 사진들을 다시 보며 두리안의 달콤함과 끝없던 미케 해변, 유람선을 타고 본 아경을 새삼 떠올리고자 한다. 아직 기억이 따끈따끈할 때 잘 곱씹어둬서 삶이 재미없는 어느 날, 이 추억들을 기쁘게 꺼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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