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나이로비 국립공원 - 코끼리 보호소 - 기린센터
둘째 날 아침, 거울 속 내 얼굴은 술에 취한 듯 새빨갰다. 생각지도 못한 어제의 강행군 탓이었다.
마사이마라 초원을 달리는 꿈에 부풀어 케냐까지 왔지만, 하루 늦어진 비행 일정 때문에 결국 그곳은 가지 못했다. 대신 도심과 맞닿아 있는 나이로비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호텔 앞으로 도착한 투어 차량은 기대와 달랐다. 나는 당연히 랜드크루저일 거라 생각했는데, 낯선 봉고차가 서 있었다. 예약할 때 차량 종류를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내 탓이겠지. ‘마사이마라는 못 가도 랜드크루저만큼은 타보고 싶었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을 안고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봉고차도 팝업 루프가 열렸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시작된 건 추위와의 전쟁. 거친 비포장길을 달리며 바람이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들의 손수건은 내 목도리가 되었고, 가방 속 여벌 옷은 모두 꺼내 아들을 감싸야했다.
사자, 코끼리, 버팔로, 표범, 코뿔소 – ‘BIG5’라 불리는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아들은 ‘라이온킹 집 보러 간다’며 들떴지만, 우리가 마주한 건 코뿔소 한 마리뿐이었다. 대신 얼룩말과 기린은 길고양이처럼 흔했다. 기린이 옐로 아카시아 나뭇잎을 뜯어먹고, 그뒤로 도심의 건물들이 함께 보이는 풍경은 초원과 도시가 공존하는 나이로비만의 장관이었다.
차 안과 루프를 오가며 동물을 구경하다 곯아떨어진 아들. 남편은 코뿔소밖에 못 봤다며 다음엔 꼭 마사이마라를 가자고 했지만, 아직은 고민이다.
국립공원 일정을 마치고 향한 곳은 코끼리 보호소. 남편 말로는 예전에 무한도전에 나왔다던 그곳이다. 하루 중 단 한 시간만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고아가 된 아기 코끼리를 돌본 뒤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가이드의 말처럼 실제로 코끼리를 만져볼 수도 있었다. 가까이 보니 거친 검은 털이 온몸을 덮고 있었고, 손끝에는 까슬까슬한 촉감이 남았다.
“코끼리가 나한테만 안 와!! 흥!”
아들은 코끼리가 자기에게만 오지 않는다며 삐쳤지만, 그마저도 귀여웠다.
마지막 일정은 기린센터.
1979년 부부가 아기 기린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오며 시작된 곳으로, 지금은 자연보호시설이자 교육의 장이 되었다. 높은 전망대에서 기린에게 먹이를 주자 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기린 혀가 내 손에 닿았어.”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기린에게 먹이 주는 재미에 흠뻑 빠진 아들은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침부터 추위에 떨고, 하루 종일 통제 불가였던 아들과 씨름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혼여행보다 더 돈을 들인 여행인데 왜 이리 고생일까.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아들이 전날 밤 그린 그림을 보자 모든 후회가 눈 녹듯 사라졌다.
‘사랑스러운 아이, 내가 어떻게 이런 아들을 낳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