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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내 Jun 24. 2024

남편이 출장을 갔다

남편은 종종 이렇게 말하 했다.

퇴근을 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이면 마치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훈련소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3월에 이직을 했고 출장이 잦아졌다
회사를 옮겨서가 아니라 업무 특성상 평소에도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권 충청권까지는 당일치기로 왔다 갔다 한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어렸기에 회사에서 배려를 해줬지만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다고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정도 출장을 간다



이번 달 예정되어 있던 출장은 2박 3일이었다

말이 2박 3일이지 하루 전 날 내려가서 3일째 되는 날 밤에 돌아오기 때문에 3박 꼬박의 느낌이다.
그래도 뭐 3일쯤이야 아이들만 아프지 않고 등원만 잘 시킨다면 괜찮아. 할 수 있어!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 ultralinx, 출처Unsplash


요즘 몸이 계속 찌뿌둥하고 피곤하다

금요일 아침 아이들을 서둘러 등원시키고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미루고 사우나로 향했다


"여보 나 사우나! 연락 안 돼"

특별히 연락이 올 곳은 남편밖에 없기에 미팅 중인 남편에게 문자를 남기고 그렇게 사우나로 들어간 나는 물멍과 안개멍을 때리고 냉온탕을 왔다 갔다 나름의 방법으로 피로를 씻어내고 있었다



순간 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단어 "유레카~~!!"
현실에서 명분 있게 잠적할 수 있는 곳 바로 사우나였어
'아 개운해~ 사우나 정기권이라도 끊을까?'


© rmrdnl, 출처Unsplash

락커문을 열자마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먼저 열어본다 남편에게 온 부재중 전화와 카톡..


'여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장이 전주, 대전, 경북까지 출장이 쭉 잡혔어'



뭐라고?!?!

아.. 갑자기 사우나로 풀렸던 내 목덜미가 다시 뭉치는 느낌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퍽 막힌다

우리 two현들(현자 돌림의 두 아들 줄임말) 정말 하루하루 최고 진상을 갱신하고 있는 요즘이다

남편과 둘이서 케어해도 힘들어서 헉헉거리는 요즘이란 말이다.



시댁은 강원도 삼척 친정은 전북 남원 둘 다 3시간 거리라 어디 도움을 받을 곳도 없다(때때로 둘 낳기를 잘했다 싶다가도 이런 현실에서는 너무 힘겨워서 서글퍼진다)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일주일 후인 줄 알았는데 당장 이틀 뒤라니..!!



내 마음속엔 두 가지 감정이 맴돌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벌써부터 두렵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 새끼들인데 엄마가 케어 못하면 어떡하냐


그날 저녁 또 한 번의 청천벽력의 소리

"여보 이번 주 일요일에 세미나가 풀로 잡혀서 아침 일찍 안성에 가야 돼"


© julienlphoto, 출처Unsplash

뭐라고? 그럼 일요일부터 지금 출장인 거네?

이를 악물었다
주말도 반납하고 나가서 열심히 돈을 벌어오겠다는데 화를 내기도 뭐 하고 참..
그러나 내 마음속에선 빡침이 조용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사실 저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어요. 두려워요. 당장 내일 주일인데 우리 아이들 교회까지 잘 데리고 다녀올 수 있도록 엄마 말 잘 듣게 도와주세요'



정말이지 엄살이 아니다
내가 아이들과 있는 모습을 보면 다들 한마디씩 한다
"아이고 엄마가 힘들겠네"
"아이들이 에너지가 넘치네 남자애들은 역시 달라"
'네.. 저 힘들어요! 도와주실 거 아니면 그만 좀 말하세요'
그렇게 또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출장 전날 밤
남편은 출장 준비로 분주하다

나는 해야 되는 일들을 뒤로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될 독점 육아로 인해 졸리지도 않지만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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