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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내 Nov 20. 2024

그런데.. 누구세요?

제가 여자친구인데요

친구의 제안으로 호기심에 시작한 장난전화가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핸드폰이 생겼고 친구들보다 핸드폰을 빨리 갖게 된 나는 연락올 곳이 없어 심심할 찰나였다



"야 너 연락올대 없지? 키 크고 잘생긴 오빠 있는데 연락해 볼래?"


키 크고 잘생긴 오빠라.. 이게 함정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기 싫다고 하자 이름 학교 다 속이고 장난쳐보자는 친구에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안녕하세요 인성오빠시죠?(조인성을 닮았기에 가명을 쓰겠다) 저는 정하영이라고 해요 ㅇㅇ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거짓) 지나가다가 오빠를 한번 봤는데 연락하고 싶어서 문자 보내요


따르르르릉


'앗 전화다..  어떡하지ㅠㅠ 답장이나 하지'


"여보세요?"

"하영이라고 했나? 지금 어디니?"

"네 저 지금 시내에서 친구들이랑 있어요"

"응 그래 오빠 ㅇㅇ 노래방인데 잠깐올래?"

"네?? 아니요 저 친구들이랑 있고 가기 어려워요"

"그래? 그럼 내가 갈게 어디쯤이야?"


망했다....


"그냥 다음에 보면 안 될까요?"

"너는 내 얼굴 안다며.. 나도 얼굴은 알아야 연락을 하지.."


하.. 진짜 꼬였다. 이게 아닌데

할 말이 없었다


"아 제가 노래방 쪽으로 갈게요 ㅠㅠ잠깐 봬요"


다행히 사복이었기에 용기를 냈다(내가 왜 용기를 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정말 딱 얼굴만 보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나도 그날 그를 처음 보긴 했다. 친구한테 키 크고 잘생긴 오빠라고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인성오빠는 고3이었고 키가 185cm 마른 몸매에 콧대가 높았다



얼굴 한번 봤다고 친근함이 생긴 건지 그날 이후로 인성오빠에게 문자가 오기도 하고 가끔은 전화가 와서 통화도 하며 지냈다.


그렇게 3개월 가까이 연락을 하면서 꽤 친해지고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정이 들어갔고 거짓말엔 한계가 있는 법.. 스스로죄책감이 몰려왔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할걸.. 이름도 나이도 학교도 다 거짓인데 어떻게 해야 되지ㅠㅠ 엄청 실망하겠지? 그래도 이대로 더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나 더는 못하겠어 우리 그 오빠한테 가서 죄송하다고 하고 사실대로 말하자!"


친구랑 같이 인성오빠네 집 쪽으로 향했다

친구와 나는 같은 아파트였고, 인성오빠네 집은 바로 앞 아파트였다


"잘못했어요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한 건데 오빠가 좋으신 분 같아서 더 연락을 못하겠어요"

 

"......  이름이 뭐야? 학교는? 나이는?"

"ㅇㅇ 고등학교 1학년 으내예요ㅠㅠ"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몇 주가 흘렀을까?

인성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반가웠지만 죄인 된 심정으로 듣기만 했다

그동안 연락하면서 지낸 게 정이든건지 인성오빠도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끔 잊을만하면 안부를 물으며 연락이 이어졌는데 수능 전날 내가 인성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능 잘 보세요~ 파이팅!!


그날 저녁 술을 엄청 마시고 전화가 걸려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내가 한 살만 어렸어도 만났을 텐데 참 아쉽다는 이야기


느닷없이 고백도 하지 않은 나는 까이고 말았다

곧 있음 오빠는 스무 살 성인이 되고, 나는 18살이다 그날 통화이 후 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은 없었다


다시 연락이 시작된 건 내가 수능 보기 하루전날


으내야 수능 잘 봐라! 오빠 훈련소 간다



다음 해

나는 대학에 갔고 인성오빠는 상근 예비역으로 집에서 출퇴근하는 군인이 되었다

매주 고향집에 내려갔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자취는 절대 안 된다는 아빠의 엄포에 이모네 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6,7살 애들과 한 살 갓난 사촌동생들이 있어서 주말에 쉴 수가 없는 환경이었고, 고향집에서 하는 주말 아르바이트가 꽤 쏠쏠했다. 웨딩드레스만 잡아주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 한주의 용돈은 넉넉히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고향집에 있었기에.. 인성오빠와 만나게 된 거다!


매주 금요일에 내려가서 월요일 아침에 다시 학교로 올라가는 루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요일 휴강이 생겼다

앗싸! 이번주는 목요일에 내려가야지~ 오빠한테는 비밀로 하고 깜짝 놀라게 해줘야겠다 ㅎㅎ


오빠는 상근예비역 출근 중이라 퇴근 전까진 연락이 수시로 되진 않았기에 나는 비밀작전이라도 하듯 기차를 차고 남원으로 내려갔다


도착하니 오빠도 퇴근하고 올 시간인 것 같아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여자목소리다

"안녕하세요 혹시 인성오빠 있나요?"

"오빠 지금 집에 없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느낌이 쐐하다

오빠네 누나가 집에 왔나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그녀가 그랬다 '오빠라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그녀다)

"실례지만 혹시 전화받으시는 분은 누구시죠?"

"그럼 그쪽은 누구신데요?"

"저 인성오빠 여자친군데요"

"에?! 제가 여자친구인데요?"

"네??.. 하아.. 지금 집이시죠? 제가 집으로 갈게요 거기 기다리세요"

"네 오세요 저도 얼굴 보고 이야기하시죠"


쿵쾅쿵쾅



뒤통수를 한대 두들겨 맞은듯하다 숨이 가빠지며 그 여자가 있는 집으로 향하는데 인성오빠에게서 계속 전화가 걸려온다.


"왜!! 전화 끊어 집으로 가고 있으니까 집에서 봐"



"으내야 제발 오지 마 걔가 지금 나 없을 때 혼자 왔는데 친구가 잘 모르고 문 열어준 거야.. 여자친구 아니야 내가 설명할 테니까 괜히 이런데 오지 마"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마자 오빠는 나를 끌고 계단 쪽으로 가서 막 그런 게 아니라고 횡설수설했다 그 여자애가 서울에서 짐을 싸서 내려왔는데 친구가 문 열어 준거라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이다


"비켜!! 근데 왜 아직도 오빠네 집안에 있는데?"

"내쫓을 거야 나도 지금 퇴근고 왔는데 이런 상황이라 너까지 온다고 해서 지금 나온 거야"


"야!! 너 나가 나가라고! 다시는 오지 마라" 인성오빠가 그녀의 캐리어를 문밖으로 밀쳐내고 그 여자도 끌어내버리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놀래게 해서 미안하다며 예전에 헤어졌는데 마무리가 안된 거라고 착각한 건지 대충 그런 이야기들



'기분 더럽네...'




실망감은 있었지만 눈앞에서 오빠의 대처에 오빠도 어쩔 수 없었을 상황을 이해해 주기로 했다


반복해서 자꾸 걸려오는 전화가 있었다

인성오빠와 뒷자리 번호가 동일했다


"누군데 전화 안 받아?"

"삼촌이야  우리 가족들은 다 뒷자리 이 번호로 쓰거든. 자꾸 돈 빌려달라고 해서 피하는 거야"


그럴듯하다


그러나 여자의 육감은 소름 끼치게 정확하다는 거




어느 날 또 울리는 전화

전화기를 낚아채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여보세요?"

문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쾅쾅거린다


"여보세요?"(그 여자다)

"그날 그 이후로 끝난 거 아니었어요? 왜 자꾸 전화하세요?"

"무슨 소리예요? 그날 오빠가 다시 와서 싹싹 빌었는데"


"지금 길게 통화 못하니까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저녁에 전화할게요"



전화번호를 받고 문을 열었다. 상기된 얼굴의 인성오빠가 내 얼굴을 살피는 게 보였는데 나는 그대로 나와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 나와 그녀는 통화를 했고 우리는 서로 알지 못했던 그동안의 그의 처신에 대해 공유했다

 

1. 그가 차고 다니던 반지는 나와의 커플링이었는데 그녀에게는 부모님이 해주신 반지라고 했던 것(그녀는 억울하고 황당해했다)


2. 그녀가 주말에는 일을 했기에 평일에 그와의 만남을 가졌는데 특히 육체적인 만남을 해왔던 것이다('나는 아무 하고나 하냐 라는 말로 그녀를 꼬셨다는 것' 나에게는 순결을 지켜주는 멋진 남자였는데 말이다)


3. 우리 두 여자 말고 돈을 대주는 여자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4.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별을 고하기로 우린 약속했다



양다리가 아니라 삼다리? 혹은 그 이상일수도..



거짓으로 시작되었던 인연의 끝은 결국 내가 거짓에 속음으로 끝이 났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라.. 훗날 나는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은 의심부터 하고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사람 겉모습과 입에 발린말에 속지말자
키크고 잘생긴 사람.. 같이다니기 쪽팔리지 않다 딱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됨됨이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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