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성장

영화 <girl>

by 동글이
출처: 네이버 영화 <girl> 포스터

트랜스젠더란 출생 시 지정된 성(性)과 스스로 정체화한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 사회는 이전까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성소수자들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헤드윅>, <대니쉬 걸>과 같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도 많이 제작되었다. 여전히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하고 그들의 삶을 다루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은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 영화들은 유사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출생 시 부여된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에, 어느 기점을 계기로 선천적인 성별과는 다른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성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스러움을 겪게 된 이들이 자신의 새로운 성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여정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동시에 외적 요소들, 예를 들어 주변인들의 편견이나 비난, 사회적 억압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대표적인 트랜스젠더 영화 <대니쉬 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니쉬 걸>은 최초의 트랜스젠더 ‘에이나르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풍경화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가 아내인 초상화 화가 ‘게르다’의 부탁으로 자리를 비운 발레리나 모델 대신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서게 되면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을 느끼고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이나르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상처를 주게 된 점에서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트랜스 아이덴티티 비평에 입각하여 볼 때 트랜스젠더는 전형적인 정체성 전치 캐릭터로, 대부분의 트랜스젠더 영화들이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은 ‘정체성 전치 캐릭터’에 맞는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2021년, 기존 트랜스젠더 영화가 가진 서사 구조와는 다른 ‘정체성 역전 캐릭터’의 서사구조를 가진 트랜스젠더 영화가 나왔다. 바로 영화 <girl>이다. <girl>은 소년과 소녀의 경계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16살 소녀 라라의 이야기로, 호르몬 치료와 학업을 병행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용기내기 시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girl> 역시 벨기에 출신의 트랜스젠더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라는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또한 <girl>은 <대니쉬 걸> 제작진이 제작했다. 그럼에도 다른 서사구조를 보이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같은 제작진이 제작하였고,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girl>만 다른 서사구조를 갖게 된 그 이유는 무엇일까.


<girl>은 다른 트랜스젠더 영화들과 구분되는 분명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 이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성 정체성을 깨닫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주인공 라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남성의 신체적 특징을 갖고 태어났지만 자신은 여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 속 라라가 여성 속옷을 착용하고, 앉아서 소변보는 등의 행동은 그녀가 이미 본인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는 라라는 여타 여자 아이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라라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아버지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발레리노가 아닌 발레리나로서 여학생들과 수업을 들으며 함께 탈의실을 사용하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라라가 여성으로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라라의 내면은 점점 혼란스럽고 복잡해진다. 이 영화는 라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잔잔하면서도 위태로운 과정을 내면에 집중하여 전개하고 있다. 학교 생활과 발레 연습 그리고 가족들과의 시간 등 평범한 일상들이 나열되지만, 그 사이사이 성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하루빨리 여성의 신체를 갖고 싶어 하는 라라의 조급한 마음이 드러난다. 라라는 자신의 남성적인 신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매번 성기에 테이프를 붙여 고정한다. 또한 신체적 차이를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학교에서 샤워하지 않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다. 라라는 신체와 성 정체성의 부조화로 인해 상당한 고민과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이는 사춘기를 겪고 호르몬 치료가 병행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결국 라라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남성적 신체로 인한 일이라 생각해 성기를 자르는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빠르게 병원으로 옮겨져 라라는 치료를 받는다. 이후 영화의 마지막엔 라라가 머리를 자르고 긴 터널 속에서 밝은 공간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라라의 큰 극복이나, 확실한 결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억지스러운 극복 과정과 결말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을 나열하여 보여주었다. 비록 아직도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긴 하지만, 어두웠고 힘들었던 이전 생활 속에서 겪은 혼란스러움과 조바심 등에서 벗어나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마주하며 살아갈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즉, <girl>이 다른 트랜스젠더 영화들과 다른 서사구조를 보였던 이유는 외적 요인들이 아닌 라라의 ‘내면적 갈등’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흔들리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차별로 인한 어려움에 초점을 맞췄던 타 영화들과 달리, <girl>은 철저히 라라의 내면적 갈등에만 집중한다. 라라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써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기에, 오로지 시선과 표정 그리고 행동만을 통해 심리를 표출한다. 이전까지는 자신이 여성임을 인지하고 잘 지내왔던 라라다. 그러나 사춘기라는 외적, 신체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여자 친구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친구들의 여성으로서의 신체를 부러워하게 되고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게 된다. 이는 라라가 자신만의 공간인 방에서 거울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숨기기도 하고 또 여성의 신체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처럼 신체와 성 정체성의 부조화는 라라에게 상당히 많은 고민과 혼란을 야기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여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강해져 그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여타 영화들과 달리 라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외적 요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춘기와 호르몬 치료 등으로 인해 많아지는 생각과 고민이 라라를 잡아먹고 만 것이다. 이는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르가 2018년 할리우드 리포터 기고문에서 말한 “나는 내가 다른 여성들처럼 태어나지 않는 데 분개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나를 괴롭히고 실망시키거나 내가 성공하길 원치 않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 자신과 내 생각이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천적 성별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일치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라라의 삶 속에서 우리들이 겪어온 익숙한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사춘기’라는 부분에서 말이다. 사춘기는 우리 모두가 겪는 것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시기다. 또한 남과 자신을 계속해서 비교한다. 난 왜 친구들보다 키가 작을까, 나도 크면 저 어른처럼 멋있어질 수 있을까, 난 왜 잘하는 게 없을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을 알게 되고 긴 사춘기의 터널을 지났을 때 비로소 한 걸음 더 성장하게 된다. 조금만 시각을 넓혀본다면 라라 역시 약간은 다른 사춘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행동 역시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여자 친구들을 보며 다른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온전한 여성의 몸으로 살고 있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것 말이다. 사춘기를 거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이 받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를 작아지게 하고 누군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며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본인뿐 이다. 라라 역시 주변에 존중하는 척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는 한편 늘 자신을 믿고 존중해주는 가족이 있다. 그렇지만 그 시기를 겪고 또 이겨내는 것은 오로지 본인이다. 이와 같은 부분에서 이 영화는 ‘라라’라는 한 소녀의 성장영화다.


<girl>이 갖는 의의는 단순히 트랜스젠더 영화가 아닌 어린 시절부터 성 정체성을 깨닫고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점이다. 16살 사춘기 소녀 라라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열망을 드러내며, 정체성 형성의 가치를 전달한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면서 많은 혼란을 겪어야 할 아이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벨기에에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 라라가 겪는 혼란스러움과 한국의 트랜스젠더 아이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이 같을까 하는 의문이다. 유럽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하다. 어쩌면 한국의 트랜스젠더 아이들은 내면의 혼란스러움과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더 어려운 시기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 조금은 덜 외롭고 아프도록 인간에 대한 포용을 기반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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