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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Dec 12. 2022

엄마에게 부케를 (좋은생각 청년이야기 수상작)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내 삶에 결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이 내 삶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턱대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악착같이 모아 온 돈이었지만 결혼을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스튜디오 촬영이나 예단 예물을 생략했습니다. 가전 가구도 쓰던 것들로 채워갔고, 사야 하는 것들은 발품을 팔아가며 몇천 원이라도 아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요.



 사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혼하셨고, 가정의 불화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습니다. 내 삶에 결혼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봐 온 결혼한 삶이라는 것이 너무나 고단하고 슬픈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시지 않았고, 어쩌다 집에 들어오시면 늘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들어오시면 책상 밑에 들어가 숨죽여 우는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고, 나는 그러한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내가 결혼하고 싶어졌다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 날,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예산을 비교해보는 저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습니다.

"운비야, 엄마가 뭐 사줄까?"

"됐어, 돈 아깝게.“

 엄마는 '주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효도다.'라고 하셨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받을 순 없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건물 청소를 하고, 식당 알바로 잠을 쪼개 모아 온 돈인데 제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우리 엄마는 나보다 더 고집이 셉니다.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엄마는 결국 이것저것 살림살이들을 차 트렁크가 터질 만큼 가득 가져오셨습니다.

"아휴, 뭐 이런 걸 다 싸오고 그래. 힘들게."     

 나의 핀잔에도 엄마는 그 마디마디 굽어있는 손으로 미련한 사랑을 신혼집 곳곳에 채워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잘 살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분홍색, 초록색 실로 이불 모퉁이마다 꽃자수를 놓아주셨습니다. 나는 그 옆에 쪼그려 누워 엄마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부케 얘기가 나왔습니다.

“엄마, 꽃값이 원래 이렇게 비싸? 부케를 꼭 해야하나?”라고 말하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운비야, 돈 너무 아끼지 말아라.”

 “응?”

 “엄마가 결혼할 당시에도 부케는 비쌌어. 그래서 그 돈 아끼겠다고 남이 전날 들었던 부케를 빌려서 들었는데, 하루 지난 부케에다 남이 들었었으니 얼마나 시들었겠냐. 식장에서 그 부케를 들고 있는데, ‘아, 이게 꼭 내 인생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프더라. 그게 결국 내 결혼생활이 돼버렸어. 그때는 그 돈 몇 푼이 아까워서 그랬는데 말이야. 그러니, 너는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아라.”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삼십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엄마의 결혼식 이야기였습니다. 엄마는 제가 결혼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결혼한 삶과 닮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물어 엄마를 위한 부케를 몰래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신랑 신부의 인사 자리를 마련했고, 저는 그 인사의 끝에 혼주석에 앉아계신 엄마를 향해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결혼 준비하며 그랬지? 돈 너무 아끼지 말거라,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거라. 나는 서른이 되도록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부케를 들었었는지도 몰랐네. 엄마의 인생에 지난날 슬픈 기억들이 가득하게 해서 미안해.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리고 잘 몰랐어. 그런데 엄마, 슬픈 기억들은 잊는 게 아니라 좋은 추억으로 덮는 거래. 나는 앞으로는 엄마가 부케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오늘 이 순간을 떠올리면서. 이제부터는 딸을 위한 인생이 아닌 엄마 인생을 살아. 늘 응원할게.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둘째 딸 올림.”

 저는 혼주석에 앉아계신 엄마에게 다가가 부케를 드렸습니다. 엄마는 말없이 부케를 받아주셨고, 하객분들은 많은 박수를 쳐주셨습니다. 비싼 부케는 아니었지만,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추억이 생겼습니다. 엄마에게 드린 부케 덕분에요.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은 행복을 덧입힐 수 있다는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모두 좋은 추억들로 남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인생이란게 항상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래도 나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후회, 미련, 아픔 등이 있었더라도 우린 아직 젊으니까요.





결혼식날 엄마에게 드린 부케

좋은 생각에 글이 실렸다. 올해 두 번. 한 번은 생활문예대상이었고, 한 번은 청년이야기대상이었다. 생활 문예대상에서는 교사로서 글이 실렸고, 청년이야기대상에서는 딸로서 글이 실렸다. 좋은생각에 실린 글은 윤문이 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원본 글이 더 좋다. 나는 반질반질한 글보다 투박한 나의 글체가 더 좋나보다. 어찌됐건 기념삼아 올리는 글. 신기한게 엄마 생신날부터 구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올해 엄마에게 드리는 생신 선물은 좋은 생각에 실린 글과 소정의 상금.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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