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가 건드린 한국인의 진짜 욕망

by wooing

광고학도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광고를 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트렌드를 읽어보려 합니다. 단순한 영화 리뷰가 아니에요. 왜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대리만족을 느끼는지, 그 안에 어떤 시대적 욕망이 담겨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글입니다.

한때 대한민국을 장악한 '범죄도시'의 마동석 주먹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정의구현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줬던 것처럼요. 왕과 사는 남자는 과연 우리의 어떤 욕망을 건드렸을까요?




일단, 이야기의 구조부터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들 아실 것 같지만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계유정난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단종(이홍위)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오게 됩니다.

그를 맞이한 건 마을 촌장 엄흥도(유해진). 원래는 유배지를 관리해 마을 경제를 살리려 했던 그였지만, 막상 온 건 왕위에서 쫓겨난 소년이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영화의 결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겁니다.

단종이 어떻게 됐는지는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으니까요. 한국사에서 손에 꼽히는 비극의 주인공이죠.

그런데도 극장을 찾았습니다. 왜일까요?


관객들은 단종의 비극 그 자체를 보러 온 게 아닐 겁니다.

일상도 이미 충분히 고단한데, 극장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사람들이 기대하고 온 건 단종과 촌장 사이의 관계일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단종이 어떻게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이 영화의 구조는 이렇게 됩니다.


단종의 비극 → 촌장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성 회복 → 단종의 비극


'회복'이라는 고점을 최대한 높여놓고, 그게 꺾일 때 슬픔의 낙차를 극대화하는 구조입니다.

얼마나 정이 쌓였는지, 관객이 단종에게 얼마나 이입했는지에 따라 그 카타르시스의 강도가 달라지죠.


그렇다면, 이 '단종의 회복' 구간에서 사람들이 느낀 대리만족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갈증의 관점에서 3가지로 짚어보겠습니다.


1. '사회적 자아'가 죽었을 때 찾아오는 '인간적 자아'의 해방


현대인은 직함, 연봉, 성과라는 외피를 유지하느라 늘 긴장 상태입니다.

그 외피가 벗겨지면 — 퇴사, 실패, 은퇴 — 인생이 끝날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죠.

단종은 '왕'이라는 최강의 스펙을 잃고 가장 비참한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적 죽음' 이후, 오히려 평범한 인간으로서 밥을 먹고, 웃고, 사람들과 섞이는 '인간적 생존'이 시작되죠.


관객들은 단종을 보며 이런 역설적인 안도감을 얻습니다.

"내가 가진 조건들이 다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존엄한 인간일 수 있구나."

가장 화려한 옷을 벗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삶'에 대한 갈망.

그게 이 장면들이 찌르는 지점입니다.


2. '성과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의 일시적 도피


현대인의 관계는 대부분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야 관계가 유지되죠.

유배지의 단종은 마을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짐이죠.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입니다. 어떤 '쓸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곁에 있는 '온기' 때문에.


"내가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해도 나를 환대해주는 공동체가 있다"는 이 설정이, 파편화되고 계산적인 관계에 지친 현대인에게 가장 강력한 위로로 작용합니다.

이 짧은 소속감의 경험이, 고구마 같은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거죠.


3. '예정된 비극' 속에서 발견하는 '지금, 여기'의 미학


이 영화는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현대인의 허무주의를 건드립니다.

단종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는 그 짧은 순간은, 어차피 비극으로 끝날 것을 알기에 더욱 찬란하게 느껴집니다.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허무함은 어느 순간부터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금수저 담론부터, 열심히 해도 취업이 안 된다는 쉬었음 청년까지.

그 영향력은 매우 강하고 끈질기게 한국사회의 단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종의 '회복' 시기는 이런 위로를 줍니다.

"어차피 끝이 비극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누리는 작은 행복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결국, 낙차가 주는 '비극적 쾌감'

이 영화는 '회복'이라는 고점을 최대한 높여놓음으로써, 관객들이 느끼는 상실의 통증을 극대화합니다.

회복 단계: "세상이 아무리 엿같아도 사람 사는 냄새는 이토록 달콤하다" (대리만족)

추락 단계: "그런데 이 잔인한 세상이 이 작은 행복마저 짓밟았다" (분노와 연민)


관객들은 단종의 회복기에서 '나도 저런 소박한 평화를 누리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고, 그의 최후에서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억울함은 정당하다'는 감정의 배설을 경험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일종의 씻김굿이었습니다.

'성공 서사'가 더 이상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버린 한국인들이, '실패했지만 아름다웠던 순간'을 보며 자기 삶의 초라함을 위로받는. 그런 의식 말이죠.




광고학도의 시선: 브랜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브랜드들은 이 정서를 알고 있었을까요?

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 먼저 알았습니다.


KCC 스위첸, '문명의 충돌' 광고를 알고 계신가요?

아파트 광고입니다. 그런데 아파트 얘기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평수도, 입지도, 브랜드 가치도 없어요.

그런 것들 대신 부부의 일상이 나옵니다.


남편이 올려놓은 변기 커버를 내려놓는 아내.

냉장고 문을 열자 우수수 쏟아지는 식재료에 질색하는 남편.

약속 시간에 쫓기는 남편과 더 예뻐 보이고 싶은 아내의 충돌.

그러다 아내가 선언합니다.

"안 가."


이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광고가 시리즈 합산 7,200만 뷰를 찍었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이겁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명이 부딪히고 이해하는 과정들의 반복이다."


단종과 촌장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구조가 똑같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두 사람이 부딪히면서, 그 과정 자체가 관계가 되는 것.

쓸모나 조건이 아닌, 그냥 함께 있다는 것이 의미가 되는 것.


스위첸이 건드린 감정도 결국 같습니다.

진짜 인간적 교류에 대한 갈망.

계산 없이, 조건 없이, 그냥 부딪히고 이해하는 그 과정에 대한 그리움이죠.

이게 아파트 광고가 아파트를 팔지 않고도 7,200만 뷰를 만들어낸 이유입니다.

kcc.png KCC 스위첸 - 문명의 충돌

이 정서를 담고 있는 광고는 스위첸만이 아닙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멜론의 '기억의 해상도는 음악이 올려주니까' 캠페인을 알고 계신가요?

음악이 일상의 기억을 선명하게 복원해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 캠페인입니다.


멜론의 광고 역시 결국 '지금 여기, 작은 순간들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그날의 날씨와 냄새와 감정. 그런 일상성의 회복을 음악이 해준다는 거죠.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당연합니다.

melon.png 멜론 - 기억의 해상도는 음악이 올려주니까

G마켓의 레트로 광고 시리즈는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수들이 나와서, 옛날 노래를 웃기게 개사하여 G마켓의 물건들을 광고하죠.

이 광고 역시 다른 방식이지만 같은 감정을 건드립니다.


H.O.T가 나와 '전사의 후예'를 부르다가 가사를 이렇게 바꿉니다.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 가쓰오~"

가쓰오 우동 제품을 내밀면서요.


웃기죠. 근데 그냥 웃기기만 한 게 아닙니다.

저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그 멜로디를 듣는 순간 과거로 소환됩니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나이, 그때의 설렘, 그 시절의 작은 일상들. 그걸 그리워하게 만드는 거죠.

자우림, 박완규, 버즈, 설운도 등등 수많은 가수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가 효과적인 이유는 단순히 '옛날 노래라서'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현재일수록, 사람들은 '괜찮았던 과거'로 도망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gmarket.png G마켓 - [H.O.T. 전사의 후예]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세 광고가 건드린 감정을 하나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한국 소비자는 '열정적이고 치열한 성취'보다는 '행복했던 과거'와 '따뜻한 현재'를 원한다.


작은 회복, 소속감, 조건 없는 관계를 보여주는 브랜드가 더 깊이 파고듭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씻김굿이었다면, 이 광고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씻김굿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가 어제보다 조금 덜 외로운 것. 조금 더 따뜻한 것.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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