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흥미로운 논문을 하나 읽었습니다.
올리브영과 다이소를 비교하는 논문이었습니다.
어디가 더 감성적인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올리브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장의 생김새부터가 올리브영이 훨씬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이잖아요.
실제로 제 경험도 그랬거든요.
다이소는 실용적이지, 감성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논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홍익대 연구팀이 두 브랜드를 모두 이용한 소비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돌리고 분석한 결과, 감정 반응 점수에서 다이소(3.83)가 올리브영(3.48)을 앞질렀습니다. 즐거움, 발견의 재미, 신뢰감, 몰입감 — 네 가지 항목 모두에서요. 감성 브랜드인 올리브영이 실용 브랜드 다이소한테 감정 점수에서 진 겁니다.
왜 그랬는지,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K-뷰티 유통의 양대축으로 떠오른 올리브영과 다이소.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도 한국 쇼핑 코스로 '올다무(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가 함께 꼽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두 브랜드의 매출 흐름이 최근 들어 엇갈리고 있습니다.
초저가 전략의 다이소는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는 반면, 올리브영의 오프라인 매장 내국인 매출은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방향도 서로 반대쪽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다이소는 생활용품에서 시작해 뷰티로 확장하고 있고, 올리브영은 뷰티에서 시작해 식품과 일상용품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각자의 텃밭에서 시작해 상대방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중입니다. 둘은 이제 라이벌이 된 셈이죠.
그 격전지는 화장품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다이소는 원래 생활용품 브랜드입니다.
수세미, 메모지, 주방용품.
그런데 언제부턴가 화장품 코너가 생기더니, 지금은 그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2022년 말 7개 브랜드, 120여 종에 불과했던 다이소 화장품은 2025년 말 기준 150여 개 브랜드, 1,400여 종을 넘어섰습니다. 3년 만에 브랜드 수가 20배 이상 늘어난 겁니다.
화장품 카테고리 매출 증가율도 2022년 50%, 2023년 85%를 기록하더니 2024년에는 144%까지 치솟았습니다.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까지 다이소 전용 상품을 개발해 입점했습니다.
국내 화장품 업계 1, 2위 기업이 다이소에 전용 라인을 만든 겁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출시한 '미모 바이 마몽드'는 다이소 입점 4개월 만에 누적 판매 100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이제 다이소는 단순한 생활용품점이 아닙니다.
뷰티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유통 채널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다이소는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매장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1단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먼저 오는 건 시각적 압도감입니다.
천장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진열대, 색깔별로 정렬된 상품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
넓은 매장인데도 왠지 꽉 찬 느낌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카테고리 안내판이 보입니다.
주방, 문구, 욕실, 뷰티, 시즌 아이템. "나는 수세미 사러 왔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다른 통로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다이소 매장의 통로는 목적 구매를 하면서도 옆 카테고리를 자연스럽게 훑게 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거든요.
2단계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뭔가 낯선 게 눈에 띕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없던 물건입니다.
다이소는 매장 배치를 자주 바꾸고, 월 100개 이상의 신상품을 꾸준히 투입합니다.
기존 인기 상품 사이사이에 신상품을 전략적으로 끼워넣어서, 올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게 만드는 겁니다.
3단계
그 낯선 물건 앞에서 걸음이 멈춥니다.
그리고 가격표를 봅니다. 2,000원.
여기서 다이소만의 마법이 시작됩니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2,000원이면 그냥 사지 뭐"가 되는 겁니다.
살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까, 물건을 보는 눈빛 자체가 달라집니다.
구경이 아니라 탐험이 되는 겁니다.
원래 살 생각으로 보는 물건은 몇 시간을 봐도 재밌고, 그게 아니라면 5분만 해도 지치잖아요.
다이소가 주는 재미는 딱 그겁니다.
근데 이 가격이 그냥 싼 게 아닙니다.
치밀하게 설계된 겁니다.
다이소는 가격을 먼저 정합니다.
1,000원, 2,000원, 3,000원, 제일 비싼게 5천원 정도이죠.
그 가격에 맞춰 원가를 역산해서 제품을 기획하는 겁니다.
일반 기업이 원가를 계산하고 마진을 얹어 가격을 정하는 것과 순서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가 "이 가격에 이 퀄리티?"라고 느끼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 감각을 목표로 만들어진 제품인 겁니다.
이 전략 덕분에 500~5,000원대 저가 상품 판매만으로도 쿠팡(1.46%)이나 이마트(0.16%)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단계
계산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한 가지가 더 떠오릅니다.
다이소 광고를 본 기억이 있으십니까? 잘 없을 겁니다.
다이소는 광고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 돈으로 상품 카테고리를 늘리는 겁니다.
대신 유튜브 채널 "다이소 픽"에서 "이달의 추천템", "1,000원으로 행복 찾기" 같은 실용적인 콘텐츠를 올립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브랜드 정체성과 완벽하게 맞습니다.
광고 없이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다이소 쇼핑리스트"를 SNS에 올리고 공유하는 구조를 만든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감정 점수가 올리브영보다 높게 나왔을까요.
논문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다이소의 감정은 "심미적 감동"이 아닙니다.
"발견의 기쁨"과 "가격 안도감"이라는 다른 차원의 감정입니다.
"어, 이게 1,000원이라고?" 하는 그 순간의 감정입니다.
살 수 있다는 안도.
그리고 그 안도감이 쇼핑 전체를 즐겁게 만드는 겁니다.
"살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리는 순간 탐험이 된다"는 것이죠.
행동 데이터도 명확합니다.
재구매 의도, 재방문 의도, 브랜드 의존성 — 모든 항목에서 다이소가 올리브영을 앞섭니다.
특히 "브랜드 의존성" 항목의 격차가 가장 큽니다.
어느 순간 다이소가 "없으면 불편한 브랜드"가 돼버린 겁니다.
수세미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다이소를 떠올리는 것처럼요.
다이소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감동적이지도 않습니다. 근데 자꾸 가게 됩니다.
"살 수 있는 가격"으로 심리적 허들을 없애고, "보물찾기 구조"로 탐험의 재미를 주고, "자주 바뀌는 진열"로 반복 방문을 유도하는 겁니다.
그게 다이소의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전략이 올리브영의 텃밭인 뷰티 시장까지 침투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올리브영을 살펴보겠습니다.
왜 올리브영은 여전히 강력한 브랜드인지.
그리고 올리브영이 다이소의 공세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