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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un 02. 2023

칼칼한 번데기탕이랑

소주 한잔 어떠실까요? ㅎㅎ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요 며칠 우리 집 제비아빠가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열흘 넘게 퉁퉁 부은 발로 절뚝거리며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소염진통제를 먹고 3-4일이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치가 않다.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고, 퇴근 후엔 소파에 앉아 냉찜질하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


그런 이유로 명령을 내리는 제비 아빠의 로봇 손발이 되어 요 며칠을 보내고 있다. 가끔은 어이없는 상황에 차오르는 화를 적당히 잘 삭여야 할 상황도 온다.


라면 하나 끓여 대령하는데도 요구 사항이 하도 디테일해서 "그럼 직접 끓여드시던가요?"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 아픈 다리를 내보이며, "이 다리만 아니면...." 하고 꽁지를 내린다. 아무튼 시간을 재가며, 양파, 대파, 계란 한알 넣는 시간, 방법까지 과하게 지시를 하니 원!


술 좋아하는 이가  열흘 넘게 알코올 냄새도 못 맡고 있으니, 그 술이 얼마나 고플까.


퇴근 후 반주 삼아 마시는 막걸리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하는 사람인지라, 요 며칠은 우연찮게 본 음주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며 그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런 류의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는 그 이지만, 얼마나 술이 고팠으면.... 싶어 안쓰러움이 인다.  


술은 못 마셔도 안주라도 고팠던가?

유튜브영상을 뒤로하고, 절뚝거리며 주방으로 발길을 옮긴다.


"번데기탕이나 해 먹어야겠다. 뚝배기는 어디 있지?"

보기에도 안쓰럽게 절뚝거리며 싱크대 하부장을 뒤진다.


"내가 할게"

그렇게 하면  내가 나설 줄 알았던 게지. 다 계산된 행동이었을 터. 또 마음 약해서 그냥 눈 딱 감고 못 본 척  못하는 나.


소파로 자리를 옮겨 털썩 주저앉더니, 한마디 더한다.

"일단 양파를 굵게 썰어서 바닥에 깔아!"

음! 또 시작이군.


어쨌거나 그렇게 그의 입을 통해서 읊어지는 레시피를 따라 내 요리인생 처음으로 번데기탕을 끓여본다.

이렇게 해먹을 요량으로 제비아빠는 유동번데기 통조림캔을 미리 사다 놓았던 모양이다.


일단 굵직하게 양파 반알을 깍둑 썰어서 뚝배기 바닥에 깐다.

그리고 그 위에 번데기통조림 한통을 국물째 탈탈 털어 넣는다.

청양고추 가늘게 채 썰어 그 위에 흩뿌려 올리고, 고춧가루 한 숟가락 골고루 뿌려준다.

불위에서 보글보글 바글바글 끓여준다.

양파가 익을만큼 다 끓었다 싶으면 후춧가루 살살 뿌리고 가늘게 채 썬 대파 파릇하게 올려준다.

끝이다. 아주 간단하다.



요거 요거 생각보다 너무 맛있다.

소주 한 병 순삭 할 수 있는 딱 좋은 술안주다.

번데기탕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시장에서 뽀얀 국물에 허옇게 쌓여있던 번데기만 보다가 뻐얼건 국물에, 청양고추의 칼칼한 매콤맛으로 변신한 번데기 맛을 보고 나 정말 이 맛에 반해버렸다.ㅋㅋ


울 제비아빠가 다 나으면 유동번데기 투통 사다가 요렇게 넉넉하게 만들어서 소주잔을 오붓하게 기울여야겠다. 세 병쯤도 거뜬하겠어! ㅎㅎ


2023년 06월 01일 월요일

6월의 시작을 번데기탕으로..... 늘봄 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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