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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ul 08. 2023

일석 삼조?

계절 김치를 담그는 손맛

흐르는 시간은 많은 것들을 조금씩 자연스럽게 변하게 만든다. 우리들의 모습도, 생각도, 자리도 말이다. 또 음식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시간 따라 음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하게 되는데, 특히나 입맛도 눈에 띄는 변화를 겪긴 하는 것 같다.


예전엔 봄만 되면 온 가족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열무김치를 두세 번은 담았었다. 겨우내 먹었던 김장김치가 질릴 때쯤(사실 김장김치가 질릴리는 없지만) 파릇한 봄기운을 머금은 열무김치를 식탁 위에 올리는 것은 봄맞이 행사 같은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확 도는 푸릇함은 잃었던 입맛도 돌게 할 정도로 시기적절한 계절 별미인 셈이다.


그런데 근 몇 년은 입맛이 변했는지, 아이들도 제비아빠도 열무김치를 별로 반가워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열무김치 담그는 일 없이 그럭저럭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올해 열무와 얼갈이가 석단에 5천원이 채 안 되는 세일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 내 입맛이 동해서 열무 한 단과 얼갈이 두 단을 섞어 사 왔다.


마트를 둘러보니, 오이도 개수가 늘어서 6개에 2980원이다. 그럼 하는 김에 이것도 싶어 카트에 담았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이들 좋아하는 깍두기도 담아보자고 1개에 1980원씩 하는 커다란 무도 3개를 샀다.


그렇다. 기왕 하는 김에.....

내가 습관처럼 말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인데, 그러다 보니 예상밖으로 일이 종종 커지는 경우가 있다.

퇴근길에 몽땅 사다가 생각보다 커진 김치 담그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주부 초년시절이야 음식 한 가지만 하더라도 준비해야 할 재료가 줄줄이 사탕처럼 엮이어, 맛도 제대로 못 내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20년 차 정도를  갓 넘어서면 주재료만 구입하면, 웬만한 기본 재료는 집 냉장고 한, 아님 식재료 보관함 같은 곳에 상비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열무와 얼갈이, 오이와 무만 딱! 고것만 사도 김치를 담그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김치를 담근다는 수고로움은 사실 준비된 양념에 주재료를 버무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 갖은양념을 준비하고, 주재료를 깨끗이 씻어 소금에 절인 다음, 잘 절여진 재료를 다시 소금기 빠지게 잘 씻어내어 소쿠리에 물이 쪽 빠지게 받쳐놓는 데까지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이 힘든 일이다.


김치를 담글 때 보통은 잘 손질된 주 재료를 소금에 절여 씻어서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번거롭게 소금에 절이는 작업을 생략했다. 얼갈이와 열무, 그리고 깍두기는 절이지 않고, 물기 자작하게 물김치 느낌 나도록 만들어보기로 했다. 왜냐면 여름도 다가오니, 김치가 새콤달콤 맛들면 그 국물에 김치말이국수 시원하게 만들어먹을 계획을 해보는 것이다.


오이만 먹기 좋게 자른 다음, 팔팔 끓는 소금물에 절여서 물기 쪽 빼고, 아삭하게 준비했다.

이렇게 절이면, 나중에 오이가 물러지법 없이 아삭하게 마지막까지 먹을 수 있다.


자! 열무얼갈이김치부터 담아 볼까?

냄비에 생수를 넉넉히 넣고, 쌀가루를 푼 다음 멀뚱하게 풀죽을 쑨다.

미리 쑤어 식혀둔 풀죽에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설탕(매실액), 액젓, 새우젓등을 잘 섞어서 김치양념장 만든다.

양념장을 맨입에 맛봐서 살짝 짭찰하다 싶게 간을 맞춘다. (부족한 간은 굵은소금으로)

큰 그릇에 양파 가늘게 채 썰어 넣고, 깨끗이 씻은 열무와 얼갈이도 먹기 좋게 잘라 넣는다.

그리고 그 위에 양념장을 좌르르 끼얹어 뒤적뒤적  골고루 버무린 다음, 김치통에 다독다독 담는다.

상온에 하룻밤 재워두면 담날 물기자작하게 물김치처럼 숨 죽은  열무얼갈이김치를 만날 수 있다.

국물을 떠서 맛보고, 싱거우면 김치국물에 소금을 더 넣어 간을 맞추고, 짜면 생수를 간을 봐가며 적당히 넣어 주면 된다.


이렇게 소금에 절이지 않고 담은 열무얼갈이김치는 절여서 담는 김치보다 훨씬 연하고 질기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엔 오이소박이다.

팔팔 끓는 소금물에 절여서 적당히 휘어지는 오이조각을 소금기 쫘악 빠지게 씻어 소쿠리에 바쳐둔다.

부추도 한단 잘 씻어 오이 크기로 잘라둔다.

양파도 먹기 좋게 굵게 채 썰어 준비한다.

김치양념은 똑같다.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설탕(매실액), 새우젓, 액젓 약간등

간이 잘 배도록 골고루 머무려 주면 완성이다. 부족한 간은 역시 굵은소금.


마지막으로 깍두기다.

세상 쉬운 것이 깍두기 담그는 것이다.

쉬운 만큼 맛도 제각각이기 쉽다. 하지만 간만 맞고, 조금 달달하기만 하면, 며칠 후 익어서 맛들면 특별히 손맛을 따질 이유 없이 기본 맛은 보장된다.

깍두기는 원하는 모양대로 무를 깍뚝깎뚝 썬다. 나는 보통의 깍두기와 다르게 기다란 직육면체를 고수하고 있다. 젓가락질이 서툴던 아이들 어렸을 때, 정육면체 깍두기를 주면 자꾸 떨어뜨리길래 요런 모양으로 해봤더니, 모양도 예쁘고, 쉽게 잘 집혀서 지금껏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집만의 특별한 모양의 깍두기인 셈이다. 요즘 무는 맛이 덜하기 때문에 단맛을 좀 더해주면 좋다.

깍둑 썬 무에 고춧가루로 미리 색을 입히는 마음으로 막 버무려준 다음, 파, 마늘, 생강, 설탕(매실액), 새우젓을 넣어 무려 준다. 부족한 간은 굵은소금으로 마무리한다. 깍두기는 혹 비릴까, 액젓 냄새가 진할까 하여 생략했다. 가끔 감칠맛을 더하고 싶어 맘껏 액젓으로 간을 맞추다보면  그 향이 거슬릴 때가 있다.

젓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생략해도 좋다.


무를 절였다가 그 물을 덜어내고 하면 물기 없이 뽀송뽀송한 깍두기를 만들 수 있지만, 이렇게 절이지 않고 담그면 물기가 자작하게 많은 깍두기가 된다. 더운 여름에는 그 국물을 물김치처럼 먹을 수 있어 좋다.


뚝딱!

도깨비방망이 휘두른 듯 순식간(?)에 김치 3종, 세 통의 김치가 완성되었다.

어림짐작과 손맛, 눈대중 그리고 그간에 세월을 따라 익어든 솜씨, 그리고 먹고 또 먹어가면서 김치 간을 맞춘다. 여전히 김치 고수의 길은 멀기만 하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좋은 그 간을 맞추기는 지금도 쉽지 않다. ㅎㅎ


인터넷에 떠도는 황금레시피를 보면, 그 숫자만 봐도 음식 할 맛이 뚝 떨어진다. 도통 숫자와 가까워지기 쉽지 않은 나의 타고난 성향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탓에 정형화된 나만의 간 맞추기 비법 없이 오로지 나의 입맛과 어설픈 감각에 의지하기에  발전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담근 김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한 번쯤은.


색깔도 모양도 맛깔스럽게 잘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주는 마법처럼, 누구의 황금레시피 없이도 나만의 김치 담그기는 나에겐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작업을 글로 남기려다 보니, 쉽지가 않다.


나의 김치 이야기는 '이렇게 담그면 맛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고파서 쓰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작은 욕심! 기록으로 남겨두고픈 나만의 소소한 바람 때문이다.

 '이렇게 김치를 담그는 사람도 있구나, 맛있어 보이네!'라고 생각하며, 한번 먹어볼까? 싶어 반찬가게를 들르고, 혹은 한번 만들어볼까? 싶어 인터넷의 황금레시피를 찾아보는, 혹은 유명 유튜버의 솜씨를 찾아보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게 감사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말을 바꿔 백견이 불여일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열 번 스무 번 보고 또 봐도, 머릿속에 이론으로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도, 황금레시피를 줄줄이 읊어도,  한번 직접 만들어보는 것만 못하다는...

음식 만들기에 제법 익숙해지려면 말이다.


김장김치가 얼마 남지 않고  빈 김치통만 늘어가던 요 즈음에 김치냉장고를 새 김치로 통통 채우니, 기분이 참 좋다. 든든하다. 새콤달콤하게 맛있게 들면 맛있는 김치밀이국수 시원하게 말아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돈다.


김치들아! 맛나게 익어다오. 


2023년 여름을 맞아 김치담그느라 수고한.....늘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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