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날인가 작은딸이 드라마 '도깨비'를 다시 보기하고 있길래 같이 앉아서 보게 되었다.
"나도 나만의 도깨비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 없이 해본 소리에 "엄마는 아빠 있잖아."라며 웃는 딸애를 보며 당황도 했고, 새삼스러웠다.
2017년 이혼 후 벌써 8년 차에 들어선 나는 싱글맘이다.
딸들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이들이 모르게 하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중에 알게 된다면 얼마나 배신감이 들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서워지기도 한다.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작은딸이 2학년이었는데 그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모르게 할 작정은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밝히기가 더 어려워진다.
아이들에게 이혼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이들과 아빠의 관계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혼사유를 아이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우리 아이들은 주변의 아빠와 딸들의 관계보다 많이 가까웠고 아이들이 워낙 아빠를 좋아했다. 그렇게 믿고 사랑하는 아빠의 이면을 알게 된다면, 나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하는 것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혼에 합의한 후 아이들에게 아빠는 일 때문에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이들 아빠만 집에서 나가고 나와 아이들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을 믿게 했다.
작은딸이 세네 살 되었을 때부터 매년 여름휴가는 내 친구 가족과 함께 다녔는데 지금까지도 매년 휴가를 함께 보내고 있다.
이혼하던 해에는 사실 여행할 기분이 전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네 식구가 함께 가는 마지막 여행이었기에 일단 다 덮어두고 휴가를 갔었다. 다행히 오랜 친구도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고 늘상 보내던 여름휴가와 다름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아이들 생일이나 졸업식 등은 항상 함께 했었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애들 아빠가 케어가 쉽지 않았는지 어디 나들이를 가거나, 체험 같은 걸 할 때도 같이 다녔다.
애들이 커가면서 주말엔 아빠랑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거나 쇼핑을 하기도 하고, 가까운 공원이나 전시회등 밖에서 아이들과 만났다.
가끔씩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됐을 때에도 아빠가 병원으로 오거나 집이든 학교든 데려다주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빠가 집에만 없을 뿐인 그런 생활을 잘해주어서 때로는 아이들 아빠에게 고마울 때도 있다.
이런 얘기를 했을 때 '도대체 왜 이혼한 거야?!'라고 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이들 아빠와 나의 남편은 별개의 역할이라는 것을 굳이 설명해야 할까 싶다.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 아빠랑 어떻게 만났어? 어떻게 사귀었어? 어떻게 결혼했어?' 요딴걸 물어보는, 순진한 아이들의 말간 얼굴을 보면서 '아빠한테 물어봐~' 정도로 말을 돌린다.
그러다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이혼한 지 오래다.'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지금으로서는 굳이 사실을 알린다는 게 긁어 부스럼이 될 것 같지만 영원히 숨길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될 일이다. 결국 나도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아이들 아빠가 재혼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될 일 이다.
작은아이가 초등 입학 때부터 ADHD 진료 중이라 소아정신과 선생님께 이 문제에 대해 상의를 드렸다. 나로서는 너무 어려운 문제였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고 명쾌한 답을 주셨다. 아이들이 모르는 상태라면 굳이 알릴 필요는 없지만 눈치를 채고 구체적으로 묻거나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솔직하게 설명하라고 하셨다.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건 맞지만, 너희에게는 변함없는 엄마고, 아빠야.'
여러 말씀을 해주셨지만 요지는 단순했다. 그리고 명확한 사실이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덜 다칠 수 있게 살펴줘야 할 것 같다.
사실 방법은 잘 모르겠고, 다만 내가 의도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정도이다.
결국 성인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아이들이니까.
그날이 오더라도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고 배신감은 조금만 느꼈으면 좋겠고, 그래도 엄마, 아빠의 사랑은 부족하지 않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을 선택한 엄마를 이해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