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정말 선택인 걸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이혼밖에 없다면 그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추운 날씨에도 개나리 꽃망울을 피우던 계절이었다.
특별할 것 없던 그날밤, 남편의 상간녀는 내가 보고 있는데 눈치도 없이 카톡이며, 문자에 페메까지 뭐가 그렇게 급한지 연신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아주 잠깐사이에 있었던 일이었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고, 공생의 관계라 여겼던 남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눈앞에 닥쳐오는 현실에 급급해 살았지만 그래도 막연히 의좋은 노부부의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있었던 남편과의 미래, 나의 노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상간녀가 메시지를 보내오던 그 시각 나는 남편무릎에 앉아서 그사람이 보여주던 동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무슨 영상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영상 위로 여자이름으로 된 메시지가 계속 오고 있었고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가 점점 의심스러운 내용이 뜨면서 휴대폰쟁탈전까지 벌어졌었다.
그날밤 이후 남편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정신의학과 진료를 보고 안정제를 처방받아먹기도 했는데, 신경안정제가 원래 그런 것인지 졸음이 쏟아져서 그마저도 잘 챙겨 먹지 못했다.
뒷조사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쓰던 폰은 남편명의였고 공인인증서도 내가 갖고 있었다.
남편의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페메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배신감이 컸다 해도 '사랑과 전쟁'같은 드라마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남편은 나와 남처럼 사는 듯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부부가 나눈 카톡 내용을 상간녀가 보고는 남처럼 사는 게 아닌 것 때문에 화를 내는 상황이 '그날밤' 내가 목격한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남자친구의 아내에게 질투를 쏟아내던 내연녀의 나이가 고작 19살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원조교제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요지경세상...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만큼의 전부를 밝혀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바퀴벌레와 같구나.. 한 마리가 보이면 수십 마리가 있다던 그것.
가장 많은 정보는 역시 스마트폰이 갖고 있었다. 유명한 커플용 어플이 깔려있었고 그들에겐 애정행각이었을 흉측한 사진으로 어플을 장식하고 있었다.
남편이 사용하던 온라인쇼핑몰 어플에서는 상간녀의 주소와 이름을 알 수 있었는데 특히 더러웠던 건 같은 목걸이를 두 개를 사서 나와 상간녀에게 각각 주었던걸 알게 된 일이었다. 꼴랑 14k.. 밸런타인데이 선물이었다. 차라리 좀 더 비싼 하나를 사랑하는 그녀에게 주었다면 덜 부끄럽지 않았을까.
카톡은 좀 묘했다.
남편은 내가 자신의 폰을 볼 것을 대비해 꼼수를 부려놓았다.
그 덕에 상간녀가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확인한 건 2명이었지만 이 역시 바퀴벌레설로 등치 될 수 있다.
한 명은 그날밤의 그녀였고 다른 한 명은 4년 전쯤부터 시작해 최근 정리하던 중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정리 중 그녀는 남편이 자기와 헤어진 후 가정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남편에게 엄청 화가 나있었다. 아이들 까지 들먹이며 비난하는 것이 마치 바람난 남편을 대하는 아내 같았다. 그 여자도 나이가 어렸는데 20대 초반부터 열다섯 살 이상 차이나는 유부남과 만났다고 생각하니 내 상식이 잘못된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남편의 외도는 광범위하고 장기간 이어졌다. 내가 몰랐을 뿐.. '왜 몰랐을까?' 자책에 빠질뻔했다.
어린 딸들이 있고 먹고사는 것이 급했는데 그것은 우리 집의 사정이 아닌, 나 혼자만의 사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꼼수는 예전에 만나던 여자의 이름을 '그날밤'의 여자 이름으로 바꿔서 저장해 놓은 것이었는데, 그것도 이름의 앞뒤 글자를 바꾸어 저장해 놓았던 것이었다. 예를 들면 '런치'를 '치런'으로.. 그렇게 되면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가려는데 상간녀가 놓아주지 않는 분위기로 보일 수 있었다.
나를 병신으로 봤거나 혹은 상황을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이겠지.
슬펐다.
화가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슬픔의 감정이 너무 컸다.
세상 온갖 설움이 다 나에게 쏟아져오는 기분이었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까.
며칠 동안 누워서 생각만 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이러려고 이 세상에 나왔나?'까지 가버렸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린 것은 아이들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우리 집 딸아이들은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었고 중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서 '내가 잘못 키웠어.'란 말을 종종 내뱉게 된다.
어린 딸애들을 보니 정신줄을 꽉 붙들 수밖에 없었다. 내 슬픈 감정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있으니 한 번은 봐주고 살아야 할까?' '나는 따로 수입도 없고 재산도 없는데 참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주제넘게도 남편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기회를 주는 방법으로 상간녀를 상대로 위자료소송을 시작했다.
최소한 믿음의 근거는 필요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