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은 믿음의 크기에 비례한다
애증의 가족관계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내 남편이, 내 아이가, 부모가 어떤 나쁜 일을 했더라도 일단은 그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는 관계였다.
누군가 사고를 당하거나 낫기 힘든 병에 걸렸을 때에도 형편 되는 사람이 생계를 이어가고 병구환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극단적인 예이지만 단순화하자면 그런 것인데, 잘못된 생각일까?
어릴 적 나의 가족이 흩어져 있었기에, 엄마가 가족을 떠났어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역시, 생각대로 살아지지는 않는구나.
전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혼한 지 8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다정한 것도 같다.
미처 몰랐지만 표리부동에 아주 걸맞은 사람이다.
맞다 못해 넘친달까, 어떤 모습이 겉이고 어떤 모습이 속인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없는 딸바보에 애처가인 양 했지만 밖에서는 조카또래의 여자애들과 놀아나고 있었다.
일을 핑계로 매일같이 밤늦게 술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왔지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또 나름 충실했던 것 같다.
나와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전화나 카톡으로 서로 밥 떼를 챙기고 사진을 주고받고, 일상을 공유했다.
내 친구들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나에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에 대해 부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 학교행사는 꼭 참여했어서 학부모들도 아이들 아빠를 다 알았고, 전남편과 나는 어딜 가나 손을 잡고 다녔다.
내 손을 잡고, 아이들 손을 잡고도 오늘밤엔 그 여자와 어떻게 놀까를 궁리했을 테지.
그 사람이 가정에 소홀 질 때도, 집에 들여주는 돈 보다 자기 치장에 더 많은 돈을 쓸 때에도 밉기는 했지만 그러려니, 생각이 있겠거니 믿었던 것 같다.
나의 믿음이 너무 컸다.
상간녀들은 하나같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한다.
'남편 관리'
논리가 없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또 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믿음이 너무 커서 남편을 의심해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의심해서 그를 감시하면 나는 괜찮을까. 믿음이 없이 부부생활이 가능한가. 의심해서 남편의 외도를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었다 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겠는가.
남편의 배신은 가족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 사람이 용서를 빌었어도 그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
아이들을 생각하니 이혼은 백 번, 천 번, 만 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보았던 그의 행동과 말이 하나하나 되새겨졌고 과거에 이해하기 힘들었던 일들은 하나둘씩 실마리가 풀렸다.
내가 이런 상태로 저 사람과 살면, 살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상간녀 소송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를 해보려고 했다. 정리가 되면 어떻게든 참아보겠다며.
소송을 준비하면서 변호사 사무실은 세 군데 정도 상담을 받았고 인터넷에서도 검색을 많이 해봤는데, 모두 다 증거를 말했다.
불륜의 증거.
불륜의 증거는 대략 두 가지가 필요했다.
상간자는 나의 배우자가 기혼임을 알고 있어야 하고, 상간자와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있어야 한다.
부정행위는 성관계가 아니더라도 연인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대화나 사진, 메시지 등 다양하다.
또 한 가지, 증거는 아니지만 중요한 참고 사항은 부부사이가 어떠했느냐 이다.
부부사이가 좋았든 나빴든 부정행위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인정되겠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지 않겠나 하는 고려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은 이혼소송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게 되겠지만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기에 부부사이가 소원했다 하더라도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부부사이에 대해서는 청구원인에 포함해서 소장을 작성했다.
나 홀로 소송을 하기로 했다.
변호사 비용이 부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혼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뭐 힘들면 그때 변호사 선임을 해도 상관없을 것이고.
기분은 더럽지만 갖고 있는 증거가 많아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외도 사실을 알고 3주도 안되어 소송을 시작했다.
온라인에 많이 퍼져있는 소장을 참고해 나만의 소장을 만들었고, 그에 맞는 증거를 첨부하고 손해배상 청구액은 3천만 원으로 했다.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소송에서 판결금액이 2천만 원을 넘기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내가 상담했던 변호사들도 대부분 천만 원 혹은 많아도 1500만 원 정도의 위자료판결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3억 도 부족하지만, 소송가액이 너무 크면 소송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데다 돈을 받기 위한 소송이 아니었기에 적은 금액으로 청구했다.
나 홀로 소송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상간녀의 주소는 모르는 상태였는데, 남편의 은행 계좌를 모두 정리해 보니 돈을 주고받은 내역이 있어 상간녀의 계좌가 있는 은행으로 문서제출명령신청서도 포함해서 소장을 접수했다.
나이 어린 상간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각자의 선택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소송 접수를 하고 1주일쯤 지났을 때 남편이 알게 되었고 존재를 알게 된 후 두 번째로 그 여자를 마주 보게 되었다.
첫 번째 만남은 남편의 신용카드를 쓰고 있는 걸 알게 되어 카드를 돌려받으러 남편의 사업장에 갔을 때였다.
전날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늦도록 자고 있는 사람의 카드가 사업장 근처 화장품가게에서 사용되었다는 승인문자.
그 사람은 카드승인문자가 나에게 온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
그 길로 카드를 받으러 갔다. 경찰에 도난신고도 해서 같이 갈까 했는데, 괜히 참았나?
내 딴엔 충분한 경고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부족했던 모양인지 여자는 숨었고, 남자는 나를 원망했다. 내가 망신을 줬다며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하겠냐며 협박을 섞어서.
잘못했다. 실수였다. 용서를 부탁하면서도 그의 행동은 그놈에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있었다.
소송 준비를 하면서 이혼 소송과 관련된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카페에 넘쳐나는 피해 사례들을 보면서 너무나 화가 났다.
나도, 내 일이 아니었을 때라면 그들의 사연에 그렇게 까지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주위의 누구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